15년 전 9월 11일…15년 간 여동생을 가슴에 묻은 사연

입력 2016-09-14 08:00

9·11테러 15주년을 맞아 월스트리트저널(WJS)이 희생자의 가족 중 한 명인 할리 디 나르도의 이야기를 전했다.
 할리 디 나르도의 인생은 2001년 9월 11일을 기점으로 180도 바뀌었다. 그 전날, 할리는 여동생 마리사와 함께 월드 트레이드 센터 107층의 레스토랑에서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웨이터에 대해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시끄럽게 전화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마디씩 흉을 보기도 했다. 마리사는 레스토랑 몇 층 아래에 있던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 피츠제럴드의 금융상품 중개인 자리에 도전해보겠다고도 했다.

 그날 밤 극심한 폭풍우가 뉴욕을 덮쳤다. 날이 개자 할리와 마리사는 레스토랑에 올라가 창문으로 보이는 맨해튼의 야경을 즐겼다. 마리사는 1병에 200달러나 하는 와인을 두 병이나 시켜서 음악가인 오빠와 부동상 중개인인 어머니를 위해 술을 땄다. 후에 할리는 그 때를 “왠지 마지막 식사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정이 지나고 둘은 집으로 가려고 나섰다. 그날따라 할리의 눈에 서른 일곱 살짜리 여동생은 유독 피곤하고 슬퍼 보였다. 마리사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고 일 때문에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그런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내일 쉬는게 어떻냐”고 물었지만 마리사는 오전 8시30분에 미팅이 있어서 그럴 수 없다고만 했다. 

 할리는 마리사를 가까운 호텔에 데려다주고 떠났다. 그는 마리사가 호텔 쇼파에 앉아 있는 것을 뒤돌아봤는데 그는 턱을 괴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할리는 그의 여동생에 대해 걱정을 했다. 

 다음날 오전 9시쯤 텔레비전을 켠 할리는  경악했다. 온통 연기로 뒤덮인 월드 트레이트 센터가 방송되고 있었다. 건물은 크게 갈라져 있었고 온갖 사이렌 소리와 비명 소리가 뒤섞였다. 그는 마리사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마리사는 받지 않았다.

 할리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여자친구와 함께 워싱턴가로 향했다. 할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무슨 건물에서 나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일부는 월드트레이드 센터 북쪽 타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북쪽 타워 104층에는 마리사의 사무실이 있었다. 할리는 잠시나마 여동생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이 느꼈다.

 그러나 불과 몇분 후 남쪽 타워가 무너졌다. 도로가 건물의 잔해들로 가득 차 할리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그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6개월 후 경찰이 뉴욕의 웨스트체스터에 사는 디 나르도 가족을 찾아왔다. 그들은 새카맣게 탄 마리사의 가방을 보여줬다. 가방 속에는 10일 밤에 먹은 저녁식사 영수증이 들어있었다. 마리사는 9월 11일 트윈타워가 테러리스트들에게 폭격당하면서 죽은 2606명의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이후 15년 동안 할리는 그의 슬픔을 묻었고 여동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은 그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할리뿐만 아니라 당시 친구나 가족을 잃었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 당시를 떠올리지 못한다. 슬픔 때문이기도 하고, 희생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한다.

 할리 디 나르도는 올해 들어서야 슬픔을 딛고 일어나 뭔가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할리와 마리사는 워낙 사이좋은 남매였고 마리사는 종종 오빠가 만든 음악을 아낌없이 칭찬해주곤 했다. 911테러가 나기 2주쯤 전 마리사는 오빠를 아파트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불안한 장래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다. 마리사는 그 때 “난 곧 죽을 거야”라고 말하며 울기도 했다. 당시에 마리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할리는 “마리사가 무너져 내리는 벽에 갇혀서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누가 9·11테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냥 자리를 뜬다”고 전했다. 2002년 치러진 마리사의 추도식은 할리가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사 가기 전 마지막으로 동생의 죽음을 본 시간이었다. 할리의 어린 아들딸이 이모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는 마리사의 마지막날에 대해 좀 더 알아둘 걸 하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할리의 생활은 괜찮았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화창했고 따뜻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할리는 “마리사는 없는데 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잘만 간다고 생각했”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2월의 어느 날, 갑자기 할리는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그날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여동생이 있던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면밀히 관찰했다. 9·11 테러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있던 사람들이 911에 전화한 내용을 다시 들어봤다.

 별 수확이 없던 그는 불현듯 마리사의 추도식에서 만난 마리사의 예전 고객 중 한명이 여동생과 사고 직후 연락을 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가족들에게 물어봤지만 이름을 알아낼 수 없었다. 할리의 첫 번째 목표는 마지막으로 여동생과 통화한 이 남성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트위터에서 마리사의 대모인 매기 존스톤이 여동생에게 보낸 메시지를 살펴봤다. 존스톤의 아버지는 마리사가 일하는 금융상품중개업 회사의 휴스턴 지사에서 몇 년 전까지 일했다. 마리사와 존스톤의 아버지는 꽤 가까운 사이였고, 존스톤의 트위터에는 마리사의 어릴 때 사진도 있었다.

 할리는 존스톤에게 곧바로 연락해 그가 마리사와 연락을 했다는 남성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마리사의 전 동료인 스티븐 존스톤은 전화를 받자마자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아내가 대신 전화를 받았고 마리사의 고객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 할리는 페트리라는 사람이 사건 바로 전 주에 마리사와 뉴욕의 카페에서 눈에 띈 적이 있다고 들었고, 즉시 페트리에게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했다. 페트리는 골드만삭스에서 일했고, 월드트레이드 센터 북쪽에 처음 비행기가 부딪혔을 때 맨해튼에 있었다. 

 페트리가 TV를 켜 빌딩이 온통 연기로 뒤덮인 처참한 광경을 봤을 때 그는 반사적으로 마리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급하게 마리사의 안부를 물었지만 전파 때문에 통화가 어려웠다. 마리사는 문자로 “무언가가 빌딩에 부딪혔다. 연기가 막 나기 시작하는데 숨쉬기가 어렵다”고 보냈고, 페트리는 다급하게 “부엌으로 가서 얼굴에 쓸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마리사는 “엄마한테 전화하러 가야겠다”고만 한 채 연락이 두절됐다.

 할리는 이 실마리를 가지고 페트리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마리사의 어머니는 딸에게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명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고 했던 그였다. 할리는 어쩌면 여동생이 남편에게 전화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리사의 남편인 제프리 스코프와 탈출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스코프는 전기회사에서 일했고, 뉴욕의 사무실용 빌딩에 대해서 잘 알았다.

할리는 여동생이 영화를 보러 갈 때도 매번 비상탈출구를 확인했던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마리사가 탈출구부터 찾았을 거라고 할리는 확신했다. 할리는 여동생이 영화를 보러 갈 때도 매번 비상탈출구를 확인했던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마리사가 탈출구부터 찾았을 거라고 할리는 확신했다.

 이후 할리는 보통 건물에 갇힌 사람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여동생이 지붕에 올라가려고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당시의 보도를 찾다가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워의 지붕에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뉴욕 경찰구조대 헬리콥터 2대가 지붕에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구조대원들은 사람들이 연기 때문에 거의 질식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모든 의문을 푼 할리는 현재 로스엔젤레스에서 미용실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는 종종 음악도 만들고 영화도 제작한다. 존스톤이나 페트리와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는 아들딸에게 마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할리는 여름 동안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자신의 곡을 재발매하면서 아이들을 출연시킨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마리사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할리는 그날 마리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더 알게 됐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