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으로 생활비 쓰고, 자녀 교육시키고, 세금도 내는 월급쟁이가 컬렉터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의 한 이동통신회사 과장으로 재직 중인 미야쓰 다이스케(53)는 샐러리맨 컬렉터 신화를 썼다. 30세 신입사원 시절 구사마 야요이 작품으로 생애 첫 컬렉션을 시작한 이래 20여년 동안 400여점을 모았다. 그런 경험을 담아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아트북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미술품 구매의 대중화를 표방한 ‘어포더블 아트페어’에서의 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 9일 만났다.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다. 그는 “금융가 등 부자들은 이미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을 옥션을 통해 고가로 구입하지만 저 같은 월급쟁이라면 신진작가 위주로 하면 무리 없이 살 수 있다”고 비결을 털어놨다. 그러나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첫 컬렉션인 구사마의 작품만 해도 50만엔(537만원)이었다. 연봉이 세전 350만엔(약 3750만원)하던 시절, 여름과 겨울 보너스를 다 써야 했다.
“컬렉션을 처음 시작할 때 골초였어요. 담뱃값까지 아끼려 담배를 끊었지요. 30대 중반부터는 자동차도 처분했습니다. 월급쟁이도 가끔 친구들과 바와 고급 레스토랑을 가지 않나요. 그런 데 가는 거 몇 번 안가면 신진작가 작품을 살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상대적으로 작품 가격이 낮은 신진들의 작품을 사는 그를 ‘1000불의 사나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사는 기쁨은 또 있다. 19세기 인상주의 작가 반 고흐, 모네와는 직접 교류할 수 없지만 이우환과 정연두 등은 직접 사귈 수 있다. 그들과 만나 작가의 생각을 알게 되고 소통할 수 있는 게 동시대 미술 수집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럭셔리한 차림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의 소장품을 빌려준 전시의 개막식에 초대받을 때가 그렇다. 그는 “재킷은 꼼데가르송(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을 입지만 티셔츠와 바지는 유니클로 제품”이라며 바지를 가리키곤 웃었다.
재테크 차원이라면 그는 성공했다. 20배는 물론 100배까지 오른 작품도 있다. “그러나 전 투자가가 아니고 컬렉터입니다. 나중에 가격이 오를 걸 생각하고 산적은 없어요. 구입한 작품을 지금껏 팔지 않고 모두 갖고 있어요.”
그는 도쿄 교외에 일명 ‘드림 하우스’를 지어 산다. 아티스트들과 함께 5년에 걸쳐 집 만들기 프로젝트를 했다. 건축가가 아닌 스웨덴의 아티스트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가 설계했고, 한국 작가 정연두의 사진으로 벽지를 만들고,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으로 미닫이문을 만드는 식이다. 작품을 소장하는 집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집의 건축 요소다.
월급쟁이로 살면서 사표 던지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 때마다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이 미술이다. “그 고마운 현대미술의 전도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직장을 다녀야 할 것 같다”는 그의 표정이 행복해보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