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이런 예능은 없었다. MBC ‘무한도전’이 또 한번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러닝타임 85분짜리 번듯한 극영화 ‘무한상사: 위기의 회사원’을 만들어냈다. 예능이라는 틀을 깨고 또 한 단계 진화했다.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했다. 그간 콩트 형식으로 종종 선보였던 ‘무한상사’의 판을 키워 본격 스릴러물로 재탄생시켰다. 지난해 10주년 특집으로 기획했다 여러 여건상 올해로 미뤄진 프로젝트였다. ‘라이터를 켜라’(2002)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과 ‘시그널’(tvN·2016)의 김은희 작가가 합류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초호화 캐스팅 라인업도 순조롭게 갖춰졌다. 빅뱅의 지드래곤을 비롯해 김혜수·이제훈·쿠니무라 준·김희원·전석호 등 연기파 배우들이 힘을 보탰다. 미니시리즈 2편에 해당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폭염의 날씨 속에 진행된 촬영은 한달여간 이어졌다.
지난 3일과 10일 두 편으로 나뉘어 방송된 ‘무한상사: 위기의 회사원’은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선보였다. 수준 높은 연출이 눈에 띄었다. 카메라 움직임부터 달랐다. 기존 ‘무한상사’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스릴러 요소를 가미한 대본은 재미와 긴장을 동시에 살렸다.
무한상사에 다니던 회사원들이 의문의 사고로 잇따라 죽음을 맞으며 심상찮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열쇠를 쥐고 있는 유 부장(유재석)마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자 정 과장(정준하)와 하 사원(하하)은 본격적으로 사건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사고를 당한 회사원들과 한 달 전 술자리를 가진 일본 거래처 직원 마키상(쿠니무라 준)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그러나 진짜 범인은 따로 있었다. 권 전무(지드래곤)가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뒤 김 과장(김희원)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이 사실을 아는 동료들을 모두 죽이려 한 것이다.
끝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권 전무의 사주를 받은 하 사원이 유 부장이 갖고 있던 결정적 증거를 빼돌리려 한다. 만년 샐러리맨으로 살다 쓸쓸히 퇴직해야 하는 비애를 토로하며 그는 “한 번만 눈 감자”고 애원한다. 하 사원의 마음을 돌린 건 유 부장의 한 마디였다.
“흔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바보처럼 사는 게 훨씬 나아요. 쪽 팔리게 사는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훨씬 나아요.”
액션·코미디·스릴러 장르를 망라한 ‘무한상사: 위기의 회사원’은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의미를 찾았다. 회사와 권력의 소모품이 됐을지언정 그저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회사원들의 애환을 어루만졌다.
건강상의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정형돈의 깜짝 등장은 특히나 반가웠다. 극 중 혼수상태인 유 부장을 바라보며 실제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내레이션을 했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이겨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회복하셔서 다 같이 웃으면서 꼭 다시 만나요.”
제작진은 “정형돈의 출연은 무한도전 시청자들에게 드리는 인사”라며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다짐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