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직전까지 배에 화물을 실었다는 정부 지적은 해운업 특성을 무시한 ‘책임 떠넘기기’라는 반박이 해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직전까지 화물을 실었다.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정부 책임도 있지만 이런 기업의 부도덕도 반드시 지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물류 대응책을 세우려고 화주 및 운항정보를 산업은행을 통해 수차례 요구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며 ”개인적으로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 9일 전 화주들에게 ‘자구안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실이 9일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운 학계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지적은 해운업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단계에 자구안 제출 등 회생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짐을 싣지 않고 영업을 조기에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해운물류학회장을 지낸 성결대 한종길 교수는 10일 “유럽까지 운항시간을 생각을 하면 법정관리 신청 전 5주 전부터는 배를 세웠어야 한다는 얘기”라며 “자율협약 중인 기업이 최소한의 영업 노력도 없이 채권단 의사결정을 기다렸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해운업 특성상 최소 1개월 이상 배를 운영하지 않고 버티기도 어렵고, 그 후엔 채권단의 지원 결정이 있다하더라도 영업 재건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한국 무역의 대동맥을 잘라놓고 한진그룹에서는 꼬리자르기, 정부 당국자들은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며 “이런 예상을 벗어나는 파장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이제는 ‘네 탓이오’만 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영업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게 아니고, 화주들에게 자율협상이 잘 되고 있다는 식의 편지를 보낸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싱가포르에서 압류된 한진로마호의 문권도 선장은 이날 한진해운 노조를 통해 “한 나라의 해운산업은 단순한 물류 기능에 한정되지 않는다. 해운의 안보측면도 순기능”이라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가장 많은 국가필수선대를 운용하고 있는 한진해운을 이대로 없애면 손해나 위험이 막중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