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이 된 것, 후회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진해운 선원노조 이요한 위원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니까, 아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는) 느껴본 적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한진해운을 살리고 한국 해운업을 지키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한진해운 직원들은 기울어가는 배에서 뛰어내리기보다 끝까지 화주와 협력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적자 기업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고 정부가 손사래를 쳐도, “미안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화물 하나, 배 한척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전세계 90여척 선박에 흩어져 있는 선원들의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배가 억류되면 선원들도 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선원들의 생활을 책임지는건 선주인 우리 회사의 일이고, 저희 능력이 부족하면 해양수산부도 적극 도와주고 있습니다. 정부를 믿고 있고 그런 점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저희 선원은 마지막까지 선박을 지키면서 안전운항하는 것, 육상직원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배에 실린 화물을 운반해 화주에게 인도하기까지 책임을 완수하고, 클레임에는 보험처리까지 마치는 일까지,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되든 우리 책임을 끝까지 다 하자는 마음 뿐입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선원들에게도 매일 뉴스가 전해진다. 하루 40여쪽이나 되는 뉴스에는 요즘 물류대란에 뒤 이은 정부와 한진그룹 경영진의 책임공방 소식이 가득하다.
“물론 저희도 아쉬운 부분이 있고, 배가 줄어들면 앞으로 계속 배를 탈 수 있을지 불안하지요. 조합원들도 그런 부분을 많이 물어옵니다. 저희 바람은 끝까지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단 배를 타고 싶다는 겁니다.”
부산의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2003년 한진해운에 입사해 노조 상근자가 되기 전까지 10여년 배를 탄 이 위원장은 자신의 선원 생활을 이렇게 얘기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나라의 항구에 들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낯선 문화를 접합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한진해운에 근무하는구나를 넘어 대한민국 해운업의 최전방에서 일한다는 자긍심을 느끼지요. 지금 회사가 어렵게 돼 마지막까지 결과가 어떻게 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해운업 최전방에 선 선원으로서 의무를 다 하겠다는 것이 우리 조합원들의 마음입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회사에서 빠져나가고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배를 버리지 말고 동요 없이 한번 달려가보자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서 해운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저희 마음은 배에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한진해운을 살려서 해기전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기전승이 무슨 말인가?
“아. 해사에 근무하는 이들은 후배들이 배에 올라오면 지금까지 우리가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물려주고, 후배들은 그걸 잘 배워서 발전시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걸 해기전승(海技傳承)이라고 합니다. 후배들에게 정부가 해운업을 버렸는데 이 자리에 있어서 어떻게 하겠나. 이래서 되겠나, 이런 소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부와 한진 경영진의 책임공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여기는 제조업과 다릅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하드웨어적인 판단, 산술적인 계산만 해서 살릴지 말지 판단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항구에 들어갔다가 출항하기 위해서는 도선사가 운항해야 하고 대리점 수속도 있고, 업체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전세계 많은 이들과 협력합니다. 요즘 외국 분들도 한진해운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 분들과 얘기하다보면 꼭 결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진해운과 한국은 신뢰를 버렸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우리 세대가 지나가야 할 것이다.’ 거기서 한진해운과 한국이란 단어가 꼭 같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화물을 중심으로 운송하지만 외국에서 볼 때는 해운업은 한 나라의 국가기간 산업이라서 한진해운 한 기업의 문제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문제로 봅니다. 저희 선원들도 이런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더 노력해서라도 마지막까지 갈무리를 잘 하고싶습니다.”
현대상선에서 선박과 인력을 인수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이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쉽지 않을겁니다. 언론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 노조도 그렇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불편스럽습니다. 해운업이라는게 유형·무형의 자산이 있는데, 저희의 무형자산인 글로벌 네트워크와 영업망, 해외인력, 이런 것은 40년간 노력해서 쌓아온 결과물이지요. 쉽사리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런 것을 어떤 순간에 경제적이 논리로 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 저희는 상실감을 느낍니다. 정부가 해운업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구나 하는 실망감이지요.”
이른바 육상직원의 얘기도 들어봤다. 이들 역시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불안을 느끼면서도 사태 수습을 위해 정신 없이 일하고 있었다.
“영업사원부터 항만 직원들까지 아침에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욕설을 듣습니다. 사실 저희가 할 수 있는게 한계가 있지요. 화물을 처리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어디서 큰 돈을 끌어올 수는 없으니까요. 배들이 멈춰섰지만 화주들, 고객들이 도와달라고 요청을 계속 해옵니다. 조금이라도 도와드릴 방안을 찾고 있어요. 긴급한 요청 받으면서 응대하고 있고, 본사 직원들도 새로운 방안은 없는지 수시로 비상회의를 하고, 이슈가 생기면 또 고민하고. 마음은 허탈하지만 그래도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한진해운 본사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렇게 일상을 전했다. 억울한 마음도 있다.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우리가 왜 이렇게 돼야 하냐는 분노, 걱정… 직워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살려야 하지요. 직원들은 힘이 없지만, 여기 이렇게 백방으로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목소리라도 내고 싶고, 저희 심정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음 아고라에 직원들이 청원을 했어요. 다음에는 또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는 9일 밤 ‘한진해운 직원들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 떴다.
‘법정 관리 이후, 한진해운은 수많은 선박의 각국 입항 허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고객들의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저희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해상직원들은 식수가 부족하여 구호가 시급한 상황이며, 해외 주재원 및 가족은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 국민 여러분,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한진해운을 살려주십시오. 한진해운이 정상화 될 수 있도록 관심과 힘을 실어주십시오.’
인터넷 청원이지만 특별한 요구사항은 없다. 국민에게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한진해운 직원은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다.
“저희 직원들이 억울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알려서 정상화 내지 물류대란을 해소할 수 있게끔, 저희 한진해운의 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우리 목소리를 알리려고 만들었습니다.”
한진해운은 화물운송을 주로 하는 특성이 있어서, 현재 빚어지고 있는 글로벌 물류대란을 국민이 사태를 체감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적자 기업이면 법정관리로 가서 청산하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직원들에게도 가장 큰 부담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해운업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길게 설명했다. 외환위기 이후 일률적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정부의 요구로 경쟁력 있는 배를 팔고 비싼 값에 빌려오는 동안 외국의 해운사들은 대형선박을 만들어 힘을 키워왔고 여기에 해운업 불황이 덮치면서 어려워졌다는 얘기였다.
-국회 청문회는 보셨나.
“저희도 많이 실망했습니다. 저도 저희 주식을 1만원대에 샀다가 900원 될 때까지 쥐고 있었습니다. 책임 있는 분이 저렇게 하셨으니 직원들도 실망했지요. 그런 부분 때문에 지금 사태 해결에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국 키는 정부가 쥐고 있고, 정부를 움직이려면 결국 국민 여론이 중요한데, 결국 기댈데는 국민 밖에 없는데….”
-마지막까지 화주들을 안심시켜 물류대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는데.
“저희는 법정관리를 상상도 못했습니다. 분명히 합의점을 찾아서 정부와 그룹에서 타결을 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바다에 떠다니는 배들이 많은데, 법정관리가 아니라 배 한척이 억류되기만해도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집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후까지 대화하고 유예협상하면서 정신없이 일했을 뿐입니다. 화물을 끌어모아 사태를 키웠다? 그건 정말 아닙니다.”
하지만 해운 학계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지적은 해운업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국해운물류학회장을 지낸 성결대 한종길 교수는 “유럽까지 운항시간을 생각을 하면 법정관리 신청 전 5주 전부터는 배를 세웠어야 한다는 얘기”라며 “자율협약 중인 기업이 최소한의 영업 노력도 없이 채권단 의사결정을 기다렸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해운업 특성상 최소 1개월 이상 배를 운영하지 않고 버티기도 어렵고, 그 후엔 채권단의 지원 결정이 있다하더라도 영업 재건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진해운 직원들은 말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책임을 통감합니다. 책임을 회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를 믿고 선적해주신 화주분들께는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 직원이 해수부에도 파견 나가 있는데, 해수부에선 끝까지 살리겠다는 쪽이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진 것이 전세계 해운불황에 기인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기회를 한번 더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었고,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최종 결정을 했는데, 솔직히 해수부가 힘이 있습니까. 결정 과정에 발언권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쨌든 누구를 비난하는 차원이 아니라 단순히 한 회사 죽이고 살리기보다 국가 전체의 산업 경쟁력을 봤을 때 살리는게 득이 더 많으니 기회를 한번 더 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이 직원은 결국 눈물을 쏟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
“저희는 기댈 데가 없습니다. 기자님, 기사 쓰실 때 다른 건 몰라도, 여기 목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책임을 끝까지 다하기 위해 죽도록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거 이것만은 좀 알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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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