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51·구속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검찰 수사관에게 2억원을 준 것은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충동적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검찰 수사관 김모(45)씨에 대한 1차 공판에 정 전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대표는 "김씨의 아내가 증권사에 다녔는데 주식 투자 등을 잘못해 형편이 너무 어렵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호소했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1억원을 줬고, 다시 저를 설득해 1억원을 줬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메트로 매장 입점 관련 고소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는 뇌물이었냐는 검찰 측 질문에, 정 전 대표는 "사건과 관련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며 "정말 어렵다고 체면도 따지지 않고 말했고 저도 자수성가를 해 워낙 어렵게 살았던 기억이 있어 충동적으로 빌려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뇌물을 주려 했다면 현찰로 바꿔서 주지 않았겠나"라며 "뇌물로 줄 의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에도 김씨가 계속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자신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날도 그랬다고 밝혔다. 정 전 대표는 "5000만원은 마지못해 줬다"며 "당시 (서울메트로 매장 사업 관련)120억 고소 사건이 있어 혹여 피해를 볼까봐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상황에 대한 진술은 달랐다. 김씨 측은 정 전 대표가 당시 사업차 갖고 있던 수표 90억원을 먼저 보여줘서 돈을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고 정 전 대표 측은 김씨가 형편을 말하며 돈 이야기를 꺼내 순간 빌려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전 대표는 "돈을 빌려준 건지 뜯긴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갚을 능력은 없었던 것 같다"며 "제가 많은 돈을 줬는데도 이민희씨와의 통화에서 더 안 빌려줘서 서운하다고 음해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어 뜯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전 대표에게 김씨를 소개해준 것은 브로커 이민희(56·구속기소)씨였다.
또 김씨 측은 투자해 놓은 돈을 받아 갚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정 전 대표는 갚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날 변호인 측이 "일련의 사건들로 서울구치소에서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힘들었냐"고 심정을 물었고, 정 전 대표는 "제 개인의 잘못으로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해 너무 힘들었다"며 울먹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김씨는 자신이 맡고 있던 서울메트로 매장 입점 사기 고소 사건과 관련해 정 전 대표로부터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지난해 2~6월 세차례에 걸쳐 수표로 2억5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2014~2015년 서울중앙지검 조사과에 근무했고 체포 전까지 유관기관에 파견돼 근무 중이었다.
김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9월2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이날 재판에는 브로커 이씨 등이 증인으로 나온다. 뉴시스
이명희 온라인뉴스부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