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사랑을 아느냐 4] 이젠 정말 사랑하고 싶어요

입력 2016-09-09 06:44 수정 2016-09-09 07:57

솔로천국, 연인지옥, 건어물녀, 초식남, 모태 솔로... 연애와 관련된 신조어가 하루가 다르게 우후죽순 생겨난다. 솔로십년이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고 연애 못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루저 취급을 당한다. 급기야 초등학생들도 연애하는 세상이 왔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제목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연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세태 속에서도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사랑은커녕, 연애근처에도 못 가본 솔로들이 수두룩하다. 평생 남자의 손길이 한번 닿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오나미 성녀님과 함께 ‘이젠 정말 사랑하고 싶어요’라고 노래를 불러야 할 판이다.

여기서 잠깐, 싱글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싱글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당신이 왜 싱글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연애의 시작이다

자신을 올바르게 살아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한다. 그래서 자신을 과대 포자하거나 허풍을 떨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만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흠집을 내서 끌어 내리지 않으며 칭찬에 인색하지도 않다.

또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은 실수하는 것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그 실수 하나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자기 성찰과 발전의 시간으로 이끈다. 이들은 자신감이 넘쳐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 곁에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자신에 대한 사랑인 자기애(self-love)를 자아도취(narcissism)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 양상은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의 저자는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외모, 업적은 과시하고 과대평가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과소평가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최고의 찬사와 특별 대우를 받기 원하고 그렇지 못하면 쉽게 실망하고 분노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1. 허풍이나 과장: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능력, 배경, 자식, 돈을 과시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2. 헐뜯기: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괴로워서 대신 다른사람의 허물을 찾아 헐뜯는다.

3.정당화와 변명: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므로 기를 쓰고 잘못을 정당화하고 변명한다.

4. 외톨이 되기: 관계를 맺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계를 회피한다.

5. 전천후 천사: 타인의 인정이나 애정에 목말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준다.

6. 냉소적 태도와 불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불신을 쉽게 드러낸다.

자존감은 자존심(pride)과 구별되어야 한다. 자존심은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굽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없는 자존심은 마치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날아와 꽂힐 수도 있다. 자기애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지나치게 자존심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혹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없을까?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진짜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을 두고 “beautfully and wonderfully made'라고 일컫는다. 우리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것이다. 혹시 지금 ‘난 별로 아름답지 않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형외과 의사의 말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아름다움의 기준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 가지고 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나는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외모, 나의 가정환경, 나의 성품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외모와 환경, 그리고 업적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우리가 김홍도의 작품과 피카소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어느 작품이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두 작품이 모두 걸작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이라고 이야기 한다. 걸작을 어떻게 다른 작품과 비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도 사랑 받는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혹은 잘못된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도 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도 ‘사랑’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교수가 있다. 바로 연세대 스포츠 레저학과 전용관 교수다. [너희가 사랑을 아느냐]는 매주 금요일 연재된다. 이 칼럼은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혹은 사랑에 서툰 청춘들에게 훌륭한 연애 네비게이터가 되줄 것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