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먹고 협박하면?… 매뉴얼만 500쪽, 김영란법 혼선 불가피

입력 2016-09-08 17:42

경찰청이 8일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수사매뉴얼’을 수사관들에게 배포하고 교육에 나섰다. 김영란법 위반 신고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면 신고’를 원칙으로 하고, 과잉·표적 수사를 막기 위해 ‘수사 비례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전화 신고에 출동하는 경우를 두거나 김영란법이 예외로 인정하는 ‘사회 상규’에 대한 해석을 남겨 놓아 시행 초기 일부 혼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매뉴얼은 모두 500쪽 분량으로 법안의 주요 내용, 벌칙규정 해설, 수사 절차, 질의응답 등이 포함됐다. 경찰은 수사보안 상 이유로 매뉴얼의 주요 방침과 질의응답 등 일부 내용만 공개했다.

경찰이 수사매뉴얼을 준비하며 가장 우려한 상황은 ‘신고 남발’이었다. 경찰은 김영란법 위반 신고 남발을 막기 위해 ‘서면 신고 원칙’을 세웠다. 112 전화신고만으로는 현장에 출동하지 않을 방침이다. 청탁금지법 13조에 따르면 신고자는 자신의 인적사항과 신고 내용에 대한 증거 등을 서면으로 접수해야 한다.

또 경찰은 수사 기관의 자의적인 법 집행과 과잉 수사를 방지하기 위해 ‘수사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균형을 지키겠다는 얘기다. 식당이나 결혼식장에 직접 출동하는 일도 금지해 영업 피해도 최소화할 방침이다. 식사·경조사비 등은 대부분 과태료 사안(1회 동일인으로부터 100만원 이하 수수)에 해당한다.

다만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금품수수의 경우 ‘현행범’으로 간주해 즉시 출동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누군가가 공직자에게 100만원 이상의 돈을 전달한다는 구체적인 신고가 접수될 경우는 현장에 출동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대응에 있어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다”면서 “일선 경찰들의 의견을 물었고 외부적으로도 법리 검토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행 초기 혼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이 ‘현행범에 준하는 경우’등 ‘긴급한 경우’를 직접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예외로 인정하는 ‘사회 상규’에 대한 해석 문제도 남아있다. 경찰은 여러 판례와 현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회 상규에 대해 누가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TF에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정신교 김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사회 상규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가 내부에서도 있었다”며 “사례가 쌓이면서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공직자에 대한 청탁이나 민원의 ‘새로운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사실 란파라치보다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이 더 두렵다”면서 “같이 식사를 하고선 갑자기 마음을 바꿔 김영란법으로 공직자를 신고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