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 아버지, 임종 못 지켰다' 故하일성 불우한 어린시절

입력 2016-09-08 10:27 수정 2016-09-08 11:23

야구해설가 故 하일성의 어릴 적 가슴 아픈 가정사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와 친구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또 각각 부모의 새로운 결혼식을 몰래 숨어서 봐야했다.

그의 가정사는 2013년 10월 발간한 자전 에세이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에 나온다.
하일성 자전 에세이


비슷한 내용은 2010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일보에서 시리즈로 연재한  '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에서 먼저 공개되기도 했다.
하일성이 가정사를 풀어 놓은 한국일보 기사. 인터넷 기사 캡처


하일성은 한국일보 기사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이렇게 적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첫째도 둘째도 가정이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자랐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가정은 깨져서는 안 되며,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슨 말로도 변명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가족간에 다툼이 있을지라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극단적인 상황만은 피할 수 있다.' 


이런 그는 8일 목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어떤 경우라도 가정이 깨져서는 안된다'는 자신이 가진 제1의 신념마저 저버린 셈이다.

한국일보와 자전 에세이에 따르면 하일성은 '인텔리' 부모님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훗날 장군까지 진급했고, 어머니는 백화점에서 외제 물건을 판매하는 신식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이혼으로 하일성의 유년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일성=국민일보 DB


하일성은 한국일보 기고문에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된 나는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었다"며 "아버지는 부대를 따라 거주지를 자주 옮겨야 했기 때문에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자신이 평소 알던 분과 재혼했고, 외국으로 나갔다. 아버지도 나중에 재혼했다.

'나는 아버지의 결혼식도 봤고, 어머니의 결혼식도 봤다. 정식으로 참석한 것은 아니고 숨어서 몰래 봤다. 부모님이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한국일보 기사 中) 

이후 하일성은 외할머니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또 '군 장성이었던 아버지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사실(이후 사형을 면했다고 하일성은 한국일보에서 적었다)과 자신이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 등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일성은 자전 에세이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새어머니에게 모두 상속한 이야기도 털어놨다.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일찌감치 돈맛을 알았다고나 할까. 아버지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어머니가 부탁을 해왔어요. 장남으로서 유산포기각서를 써달라는 겁니다. 내가 유산을 포기하면 몽땅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이 상속을 받게 되니까요. 아버지의 유산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땅이며 건물이며 지금 시세로 치자면 수십억원 정도였죠.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 부탁을 들어줄까 한 줌도 안 되는 유산 갖고도 부모형제 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소송을 마다하지 않는 세상 아닌가요? 더구나 평생을 놀고먹어도 남을 유산이라면! 하지만 부탁을 들어줬어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손을 털었습니다.'

그는 "짧은 기간이나마 새어머니는 나를 키워주셨고 이복동생이라도 같은 핏줄"이라면서 "내 피붙이한테 가는 것입니다. 새어머니와 유산을 두고 다투기도 싫었다"면서 유산 포기 이유를 밝혔다.
하일성=국민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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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