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다른 이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던 김모(27)씨는 윤모(26·여)씨가 올린 게시물에 눈길이 갔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윤씨가 운영하는 강남 의류매장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치킨집을 운영하다 5000만원 빚을 지게 된 김씨의 눈에 윤씨는 더없이 부유해 보였다. 마침 사진과 함께 올라있던 매장 주소가 눈에 띄었다.
김씨는 지난달 22일 윤씨의 매장 인근에서 잠복했다. 밤 11시50분쯤 윤씨가 퇴근하자 뒤를 밟았다. 김씨는 윤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까지 뒤쫓아가 금품을 빼앗으려다 윤씨가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자 도망갔다. 김씨는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붙잡혔다. 범행은 미수에 그쳤지만 윤씨는 영문도 모른 채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했던 셈이다.
소셜미디어(SNS)가 ‘범죄자를 위한 안내서’가 되고 있다. SNS에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SNS에 노출된 정보가 범죄의 ‘표적’으로 악용된다.
‘먹스타그램(음식+인스타그램)’, ‘옷스타그램(옷+인스타그램)’같은 신조어는 의식주까지 파고든 SNS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페이스북의 ‘체크인’이나 인스타그램의 ‘위치 태그’처럼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기능도 자주 쓰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종의 자기표현이라고 본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7일 “특히 여행지나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위치 태그를 하는 건 자랑하는 느낌 없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SNS에 자신을 표현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좋아요’를 받는 것에 존재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이 범죄자에게는 ‘좌표’가 될 수도 있다. 위치 정보는 직접적인 위험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위치정보가 드러난 게시물 몇 개만 봐도 그 사람의 평소 행적, 동선, 주거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SNS를 통해 특정인의 위치, 생활 등 정보를 가만히 앉아서 제공받는 셈”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토킹이다. 지난달 2일 A씨(27·여)에게 문자메시지를 555차례나 보내며 스토킹한 전모(28)씨가 구속됐다. 전씨와 A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전씨는 페이스북에서 A씨를 본 뒤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며 추근거렸다. 지난 6월엔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A씨의 집 위치를 알아낸 뒤 근처 공사현장 펜스에 청테이프로 A씨의 이름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사이버 스토킹’은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토킹을 당한 B씨(23·여)가 그랬다. 지난 1월 인스타그램에서 B씨를 본 한 남성은 끈질기게 괴롭혔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아낸 전화번호로 하루에 전화 160통, 보이스톡 200통을 남겼다. 두려움에 떨던 B씨가 경찰에 찾아갔지만, 경찰은 “수사에 두 달 정도 걸린다”고만 답변했다.
정보통신망법으로 사이버 스토킹을 다루고 있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피해가 발생해야 경찰이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선영 선임연구위원은 “사이버스토킹까지 포괄하는 ‘스토킹법’이 생겨야 현장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013년 6월 ‘스토커규제법’을 개정하면서 이메일 연속 송신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어떤 도구가 나오게 되면 생활에도 편리하지만 범죄에도 편리하게 된다”며 “결국 SNS 문제라기보다는 범죄가 생기는 근본 요인 자체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 너로 찍었다’… 범죄자 위한 안내서 된 SNS
입력 2016-09-08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