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의료사고, 인증제도는 ‘유명무실?’…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

입력 2016-09-07 16:05
#최근 벌초를 갔다가 발을 잘 못 디뎌 다리 골절상을 입은 A씨는 집 근처 한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재활은 다른 병원에서 받고 있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비슷한 수술을 받은 환자가 투약 오류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수술한 병원을 더 이상 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을 느꼈다. A씨는 복지부, 의료기관평가인증원 등 관련기관 홈페이지를 뒤지고 문의도 해봤지만 어느 병원에서 어떤 의료사고가 발생했고 후속 조치는 어떻게 됐는지 등과 관련한 정보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최근 C형 간염 감염, 투약 오류에 따른 사망사고, 인권유린, 안전사고 등 대형병원의 의료사고가 잇따르면서 의료기관 평가 인증제도의 사후 관리 등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복지부가 의료기관의 의료 질을 평가해 인증을 주는데서 더 나아가 사후 관리 및 조치에도 적극 나서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의료기관 인증평가 시스템을 현행 사전 관리에서 사후 관리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의료기관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의료기관 인증제도’뿐이다. 인증제도에는 ‘의료기관인증 또는 JCI 재인증’, ‘응급의료평가 최우수 기관’, ‘심평원 적정성 평가 1등급 병원’등이 있다.

‘의료기관 인증 평가’는 2011년 도입돼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등을 대상으로 환자안전, 진료의 품질 및 적정성, 의약품 및 감염 관리, 운영 관리 등의 항목을 진단해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우수성을 공인해주는 제도다.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은 2013년부터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치과병원 등은 자율참여 방식이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인증원은 의료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다수의 조사위원을 투입, 590여개 조사항목에 대해 현장조사, 시스템 추적조사, 서류검토 등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다. 부실항목이 있으면 인증을 받을 수 없다. 평가를 받은 의료기관에선 기준이 너무 가혹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혹한 평가과정을 거쳐 인증을 받으면 의료기관에선 인증과 관련한 다른 사항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강제하는 수단이나 안전점검 등 후속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결과 2015년 7월까지 인증 병원 297곳 중 238곳(80.1%)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의료사고 관련 분쟁조정 신청이 50건 이상 접수된 병원은 3곳이었고, 의료사고가 57건이나 발생한 상급병원도 있었다. 반면 환자의 조정신청을 받아들인 병원은 45곳에 불과했다. 수차례 조정신청을 받았으나 단 한 차례도 조정에 참여하지 않고 거부한 병원도 72곳에 달했다.

최근에 발생한 의료사고도 각종 인증을 받은 병원에서 발생했다.

실제 건국대 충주병원은 평가인증을 받은 후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지난달 17일에 실시한 자체 C형 간염 역학조사 결과 투석환자 73명 중 3명이 병원 내 감염으로 C형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이 발생한 14개 병원(인증평가 대상이 아닌 의원급 제외) 중 9곳이 인증병원이었다.

가천 길병원은 지난해 간호사의 실수로 비교적 간단한 수술인 손가락 골절 접합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군인에게 잘못된 주사제(베카론)를 투입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재판 과정에서 길병원 관계자들이 사고 직후 병동 안에 있던 베카론을 없애고 간호기록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하려 한 정황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인권을 유린한 사례도 있다.

용인정신병원은 지난 2013년 12월 의료기관 인증을 받았지만 식단 차별, 찢어진 환자복 방치, 병원 청소 강요 등 열악한 환경에서 환자의 인권침해와 학대를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의료기관의 안전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효문 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장성병원은 의료기관 인증을 받은 지 불과 5개월 뒤인 2014년 5월 28일 화재사고로 사망자가 22명이나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다. 어떤 병원이 우수하고 안전한지 정확한 정보가 환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의료기관 인증 평가를 받았더라도 이후 어떤 의료사고가 났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의료전문가들은 ‘의료기관 인증평가’와 함께 인증 취소 등 그에 따른 책임과 적절한 조치 등을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료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의 의료기관 인증평가는 인증 후 어떠한 안전점검도 이뤄지지 않고, 재인증 시에도 의료사고 등 과실에 대한 제재가 없다보니 문제가 많은 게 현실”이라며 “이는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보장한다는 복지부의 인증기관 평가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병원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인증을 통과한 병원을 안전하고 의료의 질이 적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다”며 “복지부는 의료사고 발생 시 현재의 병원 자체 개선 노력 외에 외부로부터의 적정한 감시체계와 재발방지책 마련 등 단호한 후속 조치를 통해 환자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담당자는 “의료기관 인증평가는 4년간 유효하다”며 “그러나 수시조사 또는 중간조사 과정에서 환자 안전 보고체계 운영 등과 관련해 현격한 문제점이 확인되면 인증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