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 프레스콜 현장

입력 2016-09-07 01:18
연출가 이윤택이 6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프레스콜에 앞서 무대 위에 제사상을 마련하고 제문을 읽고 있다. 뉴시스

“연극쟁이 이윤택이 환쟁이 이중섭 선생 영전에 고합니다. 한세상 짧게 사신 선생을 그리며 오늘만큼은 당신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살고 계셨던 당시처럼 오늘날 역시 예술이 예술답게 존재하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오늘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과 함께 이 세상을 견뎌내고자 합니다.”
6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끄는 이윤택은 이중섭의 삶을 소재로 한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프레스콜에 앞서 무대 위에 제사상을 마련하고 제문을 읽었다. 이날은 마침 이중섭의 타계 60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서양화가 임용련에게 처음 미술을 배웠다. 1937년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로 유학가 본격적인 수업을 받은 뒤 일본의 미술전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태평전쟁의 여파로 귀국한 그는 학교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했다. 해방후 원산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를 지내가 1950년 한국전쟁 중 부산과 제주도로 피란했다. 가난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낸 뒤엔 떠돌아 다니기도 했다. 1953년 가족들과 만나기 위하여 일본에 밀항하였으나 얼마 후 귀국했다. 가족과 재회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를 고통을 겪다 1956년 9월 6일 무연고자로 타계했다.

‘소’ 시리즈와 은박지 그림 등 전통과 모더니티가 절묘하게 뒤섞인 그의 그림은 혼란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다 요절한 그의 고단한 삶과 맞물려 타계 이후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 이후 ‘붐’이라고도 부를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길 떠나는 가족'. 뉴시스

올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형 기획전시회가 잇따라 열렸다. 서울미술관의 ‘이중섭은 죽었다’(3월 16일~5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6월 3일~10월 3일, 제주도 이중섭미술관 ‘내가 사랑하는 이름展’(7월 12일~내년 1월 29일)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9월 스크린과 무대에서 그를 다룬 작품이 잇따라 관객과 만난다. 우선 8일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감독 사카이 아츠코)’는 야마모토 마사코의 이야기를 그렸다. 야마모토 마사코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변치 않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중섭이 피난 시절 가족들과 머물렀던 제주도 서귀포시는 9~10일 서귀포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창작 오페레타 ‘이중섭’을 올린다. 지난해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품이다. 또 29일 서울 스페이스 바움에서 공연되는 음악극 ‘이중섭 마지막 편지’는 그의 편지를 재현한 연기에 음악을 더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9월 이중섭을 다룬 공연 가운데 연희단거리패의 ‘길 떠나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이 작품은 올해 타계한 극작가 김의경 대본, 이윤택 연출로 1991년 현대극장에서 초연된 바 있다. 이후 재공연 때마다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김의경은 타계 전 이윤택에게 이 작품을 연희단거리패에서 제작하길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공연에선 배우 윤정섭이 이중섭을 연기하며 김소희, 오동식, 이동준, 정연진, 허가예 등이 출연한다.

홍익대는 이중섭의 절친했던 화가 한묵이 교수로 재직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중섭의 ‘흰소’를 소장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처음 공연되는 연극이다.

이윤택은 “이번 공연은 연희단거리패다운 색깔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지난 2014년 명동예술극장 공연의 경우 대본을 거의 고치지 않고 초연 버전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 명동예술극장 공연이 대중적이라면 이번에는 극단에서 하는 만큼 좀더 실험적이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