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에 한 소녀의 못다 핀 꿈이 담긴,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유치원의 개원식이 열렸습니다. 이 유치원의 이름은 '혜륜 유치원'입니다.
바누아투, 그 낮선 땅에 세워진 '혜륜 유치원'은 고계석(51)씨의 둘째 딸 혜륜 양의 이름에서 딴 것입니다.
고 씨는 2014년,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많은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에서 둘째딸 혜륜 양을 잃었습니다.
딸을 잃고 한동안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지내던 고 씨는 선교사가 돼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딸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대신 이뤄줘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고 씨는 먼저 유족 보상금으로 받은 6억여 원 중 2억 원으로 부산 외국어 대학교에 '소망 장학회'를 설립하고 여려운 여건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억여 원을 들고 그는 바누아투로 향했습니다.
고 씨는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학교를 짓는 일이야 말로, 선교사가 되어 평생을 봉사하며 살고자 했던 딸의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학교를 세우는데 있어서 금전적인 지원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고 씨는 한국과 비누아투를 오가며 마무리 공사까지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비품을 하나 챙기는 일까지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지난 7월, 딸의 이름을 딴 '혜륜유치원'이 세워졌습니다. 국민소득 3,000달러에 불과한 바누아투에서는 보기 드물게 2층짜리 건물로 세워졌습니다.
'혜륜 유치원'은 5개의 교실과 1개의 사무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교실에서 20명의 아이들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머지않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세워질 예정입니다. 바누아투 정부에서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육성할 수 있는 '혜륜유치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 씨의 이 같은 선행은 현대중공업 직장 동료들에 의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지난 8월에는 현대중공업 사보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고 씨는 현대중공업 사보를 통해 “아직도 떠난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전엔 눈가에 눈물이 먼저 스친다"며 "그럴 때마다 그는 바누아투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려 본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준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딸 혜륜이도 천국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요?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