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으로 멍든 야구 꿈나무들의 ‘4시간 51분’ 혈투

입력 2016-09-03 03:38

2일(이하 현지시간)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야구장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국과 대만의 슈퍼라운드 경기. 오후 6시 30분 시작된 경기는 자정을 앞둔 11시 21분이 돼서야 끝났다. 누가 이기던 명품 드라마로 남을 만한 경기였다. 하지만 아시아 대표 야구 꿈나무들이 4시간 51분 동안 벌인 혈투는 심판의 오심 하나로 얼룩졌다.

사실 이날 8회초만 해도 경기 흐름은 대만에 넘어가 있었다. 한국 청소년야구대표팀은 경기 막판 투혼을 발휘했다. 8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강백호(서울고)는 추격의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이 홈런으로 한국은 3-5로 추격했다. 9회말 2사 주자 2, 3루 상황에서는 이정범(인천고)이 싹쓸이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9회말까지 5-5 동점. 연장 10회 주자 두 명을 1, 2루에 내보낸 뒤 경기를 치르는 승부치기가 시작됐다. 한국은 2사 주자 만루 위기에서 대만의 에이스 타자 천후를 내야 땅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치는 듯 보였다.


천후의 타구는 유격수 김혜성(동산고)이 잡아 1루수 이정후(휘문고)에게 송구했다. 송구가 조금 높았으나 이정후의 글러브가 1루 베이스를 향하는 천후의 발보다 빨랐다. 아니나 다를까 1루심의 세이프 판정이 나왔다.

힘겹게 쫓아갔던 한국 선수들은 한순간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연장 10회에서만 7점을 주며 와르르 무너졌다. 10회말 공격에서 1점을 보탰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뒤였다. 경기는 대만의 12대 6 승리로 끝났다. 대만의 야구 꿈나무들은 ‘진짜 실력’으로 디펜딩챔피언 한국을 넘는 시나리오를 구상했지만, 결국 이기고도 쑥쓰러운 꼴이 되고 말았다.

양팀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 대회 기간 동안 숙소와 야구장을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18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이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성인대표팀 선수들 못지 않았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들의 아름다운 경쟁에 또 먹물을 뿌리고 말았다.

이미 지나간 일은 잊으라고 했다. 한국은 3일 일본과 맞붙는 슈퍼라운드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아직 결승 진출의 희망은 남아있다. 결승에서 다시 한 번 한국과 대만이 만났을 땐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타이중=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