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좀 하겠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1일 20대 정기국회 첫날 이 말을 신호탄 삼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어 달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의사일정을 보이콧했다. 야당 출신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를 정면 겨냥한 것이어서 ‘개회사 파문’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이 펼쳐지게 됐다.
정 의장은 왜
정 의장은 평소 행정부 견제와 감시라는 국회 본래의 기능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이번 개회사도 직접 초안을 구상하고 다듬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6월 20대 국회 개원식에서도 “국회가 정부를 견제해 균형을 맞추는 일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정부 입법을 통과시키는 수동적 절차주의를 넘어 실질적으로 국정의 한 축이 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전임 정의화 의장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친정인 새누리당과 정부 반대에 번번이 부닥쳤다.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활성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적극 나서지 못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정 의장의 ‘택일’도 의미심장하다. 정기국회 첫날, 그것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논란이 예상되는 민감한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여기엔 여소야대가 됐지만 지난 두 달여간의 국회 운영이 19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청와대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야당에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야당은 새누리당이 말로만 추경예산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할 뿐 정작 협상 의지는 없다고 비판해 왔다. 이런 여권에 정 의장이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야권에선 이달 정기국회 성패가 내년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강대강 치닫는 정기국회
김영수 국회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정 의장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면서 일종의 데드라인으로 정한 오후 9시를 5분 앞두고 국회 정론관을 찾아 “개회사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추후 논의하더라도 추경 등 시급한 현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참석을 여야에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사과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그렇게 추경 처리가 급하면 (새누리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에게 의사봉을 넘기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경우냐”고 성토했다. 급기야 새누리당 의원 40여명은 오후 11시쯤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해 의자에 앉아 있는 정 의장을 둘러쌌다. 책상을 치고 고함을 치는 소리가 밖에까지 새어나왔다. 이들은 본회의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겨 2일에라도 추경예산안을 처리하자고 했다. ‘정 의장은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피켓도 등장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사퇴 촉구 결의안엔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위반을 징계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 발언이 정권 흔들기라고 보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세다.
야권은 “추경예산안도 통과시키지 않는 여당이 진짜 여당이 맞느냐”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집권여당의 무한정 몽니를 지켜볼 수 없다”고 압박했다. 정 의장 개회사를 ‘엑설런트하다’고 극찬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가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푸념하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으니 잘해야지”라고 일침을 놨다. 더민주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는 “의장이 그 정도 얘기도 못하느냐”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이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