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오는 저승에서 아내 에우리디체를 구해내지만 이승으로 나갈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지키지 못한다. 결국 에우리디체는 오르페오의 손을 놓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
오르페오 이야기는 서양 음악극을 대표하는 오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두 작품의 소재가 됐다. 바로 오페라의 효시격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와 오페라의 형식을 확립한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다.
오르페오 이야기가 이번에 창극으로 만들어진다. 9월 23~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창극단의 오페라 창극 ‘오르페오전’이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오페라 연출가로 꼽히는 이소영이 대본과 연출을 맡고, 국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여온 작곡가 황호준이 음악을 맡았다. 이소영은 지난해 9월 국립오페라단장 퇴임 이후 4년만의 무대 복귀작이었던 국립창극단의 창극 ‘적벽가’로 공연계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어낸 바 있다.
31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연출가 이소영은 “지난해 ‘적벽가’를 통해 창(唱)의 외연 확장이 창극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오르페오전’에선 동양의 오페라가 창극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이번에 ‘오페라 창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창극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창극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앞으로는 필요없는 용어아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제목을 ‘오르페오전’으로 붙인 것은 우리 판소리의 열두바탕과 같은 레퍼토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고 덧붙였다.
‘오르페오전’은 작곡가와 대본가가 음악적 영감을 공유한 뒤에 함께 작업한 과거 오페라 제작 방식을 따른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작품의 철학과 무대에서는 동양사상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을 ‘올페’와 ‘애울’로 바꾼 것 외에 무대미술의 주요소로 한국의 전통적인 방패연과 얼레를 차용했다.
이소영은 “연의 가운데가 구멍이 뚫린 방패연은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여러 동양적 사상을 담고 있다. 이 구멍을 배꼽이라고 하는데, 배꼽은 탯줄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이 구멍을 사후 세계로 가는 출입구로 봤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전무대가 있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를 거대한 방패연으로 만든 뒤 배경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수묵 산수화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원을 상징하는 얼레, 인연을 상징하는 실 등도 방패연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는 축으로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의 관계와 성격이 서양 신화나 오페라와 달리 동양적 정서가 가득해졌다. 신화 속 오르페오는 에우리디체를 보고싶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에우리디체는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오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올페는 자발적으로 애울의 손을 놓는다.
이소영은 “나는 올페가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순리를 지키려는 애울의 마음을 알았고, 그 마음에 응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아보라는 애울의 말에 올페가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보는 것으로 설정했다”며 “이런 정서야말로 서양과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오페라 팬들 사이에선 지난해 무대에 복귀한 이소영이 그의 홈그라운드로 언제 돌아올지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오페라는 내 고향인 만큼 떠날 수 없다. 머지 않은 시기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다만 창극을 만나면서 총체적인 종합예술인 음악극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소리와 울림의 의미를 찯다보니 동서양에 대한 경계가 없어지는 것 같다. 한국 음악극의 지향점을 찾고 있는 지금이 즐겁다”고 미소지었다.
이번 작품의 올페 역에는 김준수와 유태평양, 애울 역에는 이소연 등 국립창극단의 젊은 스타 단원들이 캐스팅 됐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