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모(36·여)씨는 지난 5월 구속 수감된 남편 이모(41)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성동구치소를 찾았다. 이씨는 입감되기 전 윤씨와 다른 지인들에게 ‘의료 사고로 구속됐는데 곧 사면돼 출소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세지를 남겨 놨다. 2011년 6월 지인의 소개로 이씨를 만난 윤씨는 같은 해 11월 결혼식도 올렸다. 이씨는 자신을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일하는 의사라고 설명했었다.5년 가까이 남편을 의사라고 믿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구치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씨의 친누나는 이씨가 의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씨의 직업을 의심한 윤씨는 해당 병원을 찾았다. 이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윤씨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윤씨는 결혼 전 이씨에게 병원 개원 명목으로 3억6000만원도 빌려줬다.
이씨와 올린 결혼식도 거짓이었다. 결혼식 때 왔던 이씨의 부모와 친구들은 모두 이씨가 이벤트 회사를 통해 동원한 사람들이었다. 의사 행세를 한 이씨는 2013년 출산한 자신의 아이에게 직접 예방접종 주사를 놓기도 했고, 윤씨의 가족들에게 영양제 주사도 놨다. 진단서가 필요한 윤씨의 가족들에게는 병원 명의의 진단서도 발급했다. 집에는 이씨가 가져다 둔 각종 의학 서적이 있었다. 이씨를 의사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씨의 사기 행각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결혼 이후에도 가명을 쓰고 다니며 여성 3명에게 결혼을 전제로 접근해 2억4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낚시 동호회에 나가서는 자신을 기업 인수합병 분야의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라고 소개하고 남성 6명으로부터 주식 투자 명목으로 5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2011년부터 지난 5월까지 모두 10명으로부터 11억원을 가로챈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의사 면허 없이 그동안 모두 22차례나 불법으로 주사를 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가 발급한 진단서도 모두 위조된 문서였다. 이씨는 의약품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잠깐 일했을 뿐 의사 면허는 없었다. 이씨는 가로챈 돈을 대부분 주식투자나 유흥비로 탕진했다.
지난 5월 구속 수감된 이유도 의료사고가 아니었다. 다른 여성에게 결혼을 전제로 접근해 1000만원 정도를 가로챘다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것이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씨에게 사기·의료법 위반·사문서 위조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31일 밝혔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