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 사퇴 파문…불신과 불통의 결과

입력 2016-08-30 22:00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송승환 개·폐막식 총감독, 정구호 개·폐막식 총연출(왼쪽부터). 국민일보DB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개·폐막식의 연출을 맡았던 정구호 디자이너가 사퇴했다. 개막까지 1년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총연출의 사퇴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통의 결과였다.
30일 정 디자이너의 사퇴를 처음 보도한 매체는 조직위 관계자의 입을 빌어 송승환 총감독과의 불화를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하지만 정 디자이너를 비롯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송승환 총감독, 분야별 감독단 등의 입장은 모두 달랐다. 

사실 조직위 등에 따르면 정 디자이너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지난 8월초다. 그래서 이희범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송승환 총감독, 음악·미술·무용·의상 등 분야별 감독단 10여명이 참가한 리우올림픽(8월 6~22일) 시찰단에도 불참했다.

성백유 조직위 대변인은 “정 디자이너가 사의를 표명하긴 했지만 조직위에서 공식적으로 수리한 것은 아니었다. 조직위원장님이 조만간 정 디자이너를 만나 다시 한번 설득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퇴가 기정 사실로 보도돼 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디자이너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전화를 받은 뒤 자신의 사퇴 소식이 보도된 것을 알았다. 정 디자이너는 “조직위에 사퇴 의사를 전달한 것이 맞다. 송 총감독 체제 아래에서는 내 의도대로 개·폐막식을 준비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이상 일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송 총감독과의 불화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조직위 안에서 모종의 갈등이 있었음을 감추지 않은 셈이다.

정 디자이너는 지난 3년간 국립무용단의 ‘단’ ‘묵향’ ‘향연’ 등의 작품의 무대, 의상, 연출을 도맡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전통춤을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풀어낸 그에게 관객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원래 송 총감독이 지난해 그에게 미술 감독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 그를 설득해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로 초빙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 송 총감독은 “정 디자이너와 갈등설이 왜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어떤 입장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조만간 조직위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한다고 하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송 총감독은 말을 아꼈지만 감독단 가운데 그와 가까운 A씨는 “정 디자이너는 왜 송 총감독에게 책임을 전가하는지 모르겠다”며 “정 디자이너는 총연출을 맡았으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회의에 불참하는게 다반사였다. 지난 1월 13일 총연출 임명 소식이 공식 발표된 이후 감독단 공식회의 13번 가운데 정 디자이너가 참석한 것은 겨우 5번이었다. 총연출이라면 공식회의가 아니더라도 감독단과 자주 만나 업무를 의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 디자이너는 “내가 공식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회의는 모두 참가했다”고 반박했다.

감독단 안에서 중립적인 B씨는 “송 총감독과 정 디자이너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며 “송 총감독의 경우 CEO 스타일로 매우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게다가 개·폐막식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거의 대부분 수용해 왔다”고 밝혔다. 오히려 B씨는 “이희범 조직위원장이 정 디자이너의 잇단 회의 불참에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표했다”면서 “정 디자이너의 비주얼적인 탁월함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필라 부사장, 서울 패션위크 총감독, 각종 브랜드 런칭 등 하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조직위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 디자이너의 이런 상황을 감안하기로 하고 총연출에 임명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반부터 올인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려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전했다.

정 디자이너의 사퇴 이후 논란이 커지고 있는 부분은 현재 나와있는 개·폐막식 기획안의 기여도 여부다. 이날 사퇴를 처음 보도한 언론은 기획안 아이디어의 80%가 정 디자이너가 냈으며, 사퇴와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쓰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개막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조직위가 현재 기획안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감독단은 “가장 늦게 감독단에 들어온 정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80%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반박했다.

감독단의 A씨는 “개·폐막식의 기획안 아이디어 가운데 정 디자이너가 낸 것은 국립무용단의 ‘향연’에서 선보였던 일무와 오고무 뿐이다. 전통 결혼식이나 케이팝 등 다른 아이디어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활동한 감독단에서 나온 것이다”고 말했다. 감독단의 C씨도 “개·폐막식은 한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출을 맡은 정 디자이너가 이런 아이디어들을 모아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렸지만 아이디어를 80% 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보도된 내용 가운데 정 디자이너 지난 1월 총연출로 임명된 이후 계약 없이 무료봉사를 했다는 것은 조직위의 업무 태만 또는 지연이 빚은 결과로 보인다. 송 총감독을 비롯해 감독단이 지난해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정식 계약을 맺은 것은 최근 상황이며 순차적으로 그동안의 급여를 지급받고 있다. 이 때문에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박칼린이 지난해 10월 총연출로 임명돼 3개월간 활동하다가 사퇴한 것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다.

어쨌든 조직위로서는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성백유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업무를 하시던 분이 계속 맡는 게 좋지 않겠는가. 총연출의 교체 여부에 대해서는 조직위 차원에서 현재 논의중으로 결론내린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