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때 초판 발행 … 고학(苦學)의 산물
‘수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수학의 정석'이 이달 31일 발행 50주년을 맞는다.
수학의 정석은 1966년 8월31일 세상에 나왔다. 홍 이사장이 3년에 걸친 준비 끝에 만 29세에 펴냈다.
수학의 정석은 우리나라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초대형 스테디셀러다. 요즘 중고생의 아버지·어머니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학창시절 이 책으로 수학 공부를 했다.
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새로운 경쟁작이 쏟아져 나오는 참고서 시장에서 이는 대단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스물일곱 살짜리가 뭘 안다고 책을 씁니까? 그렇지만 그때 서두르지 않았다면 영원히 책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홍 이사장은 “당시 젊었기에 당돌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젊었기에 혼신의 힘을 다 쏟을 수 있는 정열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수학의 정석’의 정석은 홍 이사장의 대학시절 고학(苦學)의 산물이다. 서울대 수학과에 재학 중이던 저자는 학비와 하숙비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과외지도와 학원출강을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의 수학참고서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수학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외국서적 판매점을 뒤져가며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 수소문,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작 문제도 만들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 50년간 줄곧 사랑받는 이유는?
‘수학의 정석’은 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학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출제 경향이 크게 바뀌든, 대학별 고사가 있든 없든, 내신을 중시하든 안하든 ‘수학의 정석’은 고교생이라면 대부분 봐야 하는 책으로 자리 매김을 했다.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성지출판측은 “수학의 기본과 원리를 수학의 생명인 논리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알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각 분야마다 쉬운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어려운 문제로 기본 원리의 순서에 따라 전개해 나갔기 때문에 누구나 무리 없이 학습할 수 있고, 출제 가능한 모든 유형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어떤 출제에도 높은 적중률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이사장은 그동안 개정판을 손수 집필해 왔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문제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카드에 적어 모아뒀다.
그러는 사이 든든한 동반자가 생겼다. 사위 이창형 씨와 딸 홍재현 씨다. 두 사람은 서울대 수학과 동기생으로 홍 이사장의 개정 작업을 도왔다.
2001년도 개정판 책머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번 개정판이 마련되기까지는 내 사위 이창형과 딸 홍재현 부부의 도움이 무척 컸음을 여기에 밝혀둔다. 자식 세대가 같은 전공의 길을 걷게 되어 흐뭇한 터에, 두 사람이 항상 곁에 있으면서 꼼꼼하게 도와준 덕분에 더욱 좋은 책이 된 듯하여 무엇보다 뿌듯하다.”
올해 팔순을 맞은 홍 이사장은 두 사람의 도움에 이어 훌륭한 필진을 찾아 개편 작업에 참여시키고 있다. 훌륭한 필자를 찾아 세대를 물려 전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 책이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고 보고 ‘2016년 기념전시’에 ‘수학의 정석’ 초판본을 전시했다.
◆ 저자가 일러주는 ‘수학 잘하는 길’ 세 가지
저자는 수학을 잘할 수 있는 길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눈으로만 읽지 말고 종이에 직접 써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계산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계산도 정확해 진다. 그리고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이해력도 길러진다.
둘째 자기 힘으로 풀어야 한다. 문제를 대할 때마다 풀이를 종이로 가려두고 자기 혼자의 힘으로 풀어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바로 풀이를 본다든지 금방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태도로는 절대로 수학실력이 향상될 수 없다.
셋째 예습 중심의 학습방법을 택해야 한다. 수학을 공부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머리로 생각하고, 생각으로써 능력을 단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복습보다는 예습 중심의 학습방법을 택해야 한다.
◆ 책 팔아 번 큰 돈 ‘상산고 설립’ - 명문고로 육성
홍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1980년 ‘학교법인 상산학원’을 설립하고 1981년 전북 전주에 상산고등학교를 개교했다.
“학생들 덕분에 번 돈이므로 학생들에게 다시 돌려주자”는 뜻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국가와 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곳에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상산고는 3년 뒤 첫 졸업생 572명 가운데 49명이 서울대에 합격하는 등 뛰어난 입시성적으로 전국적인 눈길을 모았다.
이후 2003년 자립형 사립고로, 다시 2010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여 정부지원 없이 경영되고 있다. 짧은 기간 명문고로 우뚝 선 상산고는 2016학년도 입시에서 54명이 서울대에 합격하고 150여명이 의·치·한의학계열에 합격하는 성과를 냈다.
◆ “벌써 반세기… 놀랍고 감사”
홍 이사장은 “나라의 힘은 우수교육에서 나온다”며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우수 인재 양성에 온 힘을 다 쏟고 있다.
1998년엔 서울대에 연건평 3600㎡ 규모의 초현대식 연구동인 ‘상산수리과학관’을 건립, 기증했다. 순수과학 발전을 염원하고 모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개관식에서 홍 이사장은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했다.
“새로 마련된 이 순수 기초과학의 요람에서 뛰어난 인재가 수없이 배출되고, 그 중에서 다시 필드상이나 노벨상 수상자가 한 두 분이라도 탄생되어 온 인류의 번영과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밖에 홍 이사장은 고향인 정읍시 태인면에 ‘명봉도서관’을 건립해 지역 후학들이 편히 공부하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올해는 마침 홍 이사장의 나이 팔순, ‘수학의 정석’ 발행 50주년, 상산고등학교 개교 35주년 등 세 가지 경사가 겹친 해이다.
홍 이사장은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책을 낸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니 나 스스로도 놀랍다. 독자들이 사랑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