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맘편뉴스에선 출산 후 재취업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얘기했었습니다. 댓글엔 공감한다는 식의 반가운 댓글도 많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선택할 삶인데 왜 이렇게 불평이 많냐는 식의 비난도 적지 않았죠. ‘프로불편러’라는 지적과 함께 ‘징징대지 말라’는 따끔한 질책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대책도 대안도 내놓지 않고 징징대기만 했을까하고요. 고개가 갸웃 되더군요. 워킹맘들은 끊임없이 자구책을 내놨습니다. 아이를 맡긴 죄인이라서 그런지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아이 맡길 곳을 찾아 헤맸죠.
양가 어른들이나 친인척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워킹맘들은 결국 베이비시터를 쓰는 방법으로 대안을 찾습니다. 이른바 피 한방울 안 섞인 이모님을 모신다고 하죠.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주 이모님을 쓰며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어렵사리 칼퇴근을 고수하며 출퇴근 이모님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건 이모님에 의해 워킹맘의 삶이 180도 달라진다는 건 같습니다. 그래서 워킹맘의 오복 중 하나가 바로 ‘이모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죠.
운이 좋게 근면 성실한 이모님을 만난 워킹맘은 사회생활이 그나마 평탄합니다. 우선 근태 관리가 됩니다. 반대로 이모님이 근면 성실하지 않거나 부득이하게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라면 근태는 엉망이 되죠. 이모님이 결근하면 워킹맘도 결근해야 합니다. 이모님이 조퇴하면 워킹맘도 조퇴해야 합니다. 워킹맘의 근태는 100% 이모님의 근태와 맞물려 있습니다. 갑자기 그만 둔다고 선언해버리면 장기 결석이나 연쇄 퇴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리거나(영아 수준) 예민하기라도 한다(분리불안의 증세를 보이는 아이)면 이모님을 바꾸는 건 무지막지하게 큰 일입니다. 두렵기까지 하죠. 바뀐 이모님과 아이가 적응하는 시간이 꽤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엄마들은 일도 육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낯가림을 하는 아이라면 낯선 이모와 단둘이 있던 시간만큼 밤 시간에 보챕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 동이 트는 걸 봐야 하는 날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죠.
같은 상황이지만 남편들은 독립적으로 근태관리를 합니다. 회사에 출근한 남편들은 기혼의 여직원들이 육아 문제로 근태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며 “이래서 아줌마는 안 돼”라고 말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그런 아줌마라는 사실을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하는 듯이요. 때문에 워킹맘은 이모님을 바꾸는 게 두려워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자연스레 전전긍긍하게 되죠.
여기서 전제는 베이비시터를 무리해서라도 쓸 수 있는 워킹맘이라는 겁니다. 이 경우 그나마 행복합니다. 워킹맘 중엔 비용 때문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혼자 아등바등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침 7시 어린이집 등원 1등, 저녁 7시 어린이집 하원 꼴지를 도맡아 하면서 말이죠. 어린이집에서 별탈없이 생활해 주는 아이에게 감사해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엄마들은 선생님들한테 항상 죄인입니다. 정부가 이를 개선하겠다는 이유로 맞춤형 보육을 강행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종일반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오후 4시를 전후로 하원하죠. 대안이 없는 엄마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이를 맡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워킹맘 사이엔 계급이 있습니다. 친정엄마 찬스를 쓰는 성골, 이모님의 도움을 받는 진골, 어린이집에 의존하는 6두품. 대략 이렇게 나뉘죠. 6두품 워킹맘은 직장, 육아, 가사 이 3가지를 모두 소화하는 ‘슈퍼맘’이 돼야 합니다.
워킹맘의 이런 애환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면 일각에선 “형편에 맞춰 살면 되지 괜히 돈 번다고 징징댄다” “덜 벌고 덜 쓰면 되는 것을 욕심부려서 그러는 거다” 식의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과거 어머니들과 비교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워킹맘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형편에 맞춰 살기 위한 거라는 게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2년에 한 번씩 1000만원에서 2000만원씩 오르는 전세 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무리라는 걸 알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삽니다. 그 이자를 갚기 위해 육아도우미까지 써가며 몇 십 만원밖에 남지 않는 월급을 받으려는 겁니다. 결코 TV드라마에서 나오는 또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처럼 워킹맘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엄마들의 이런 몸부림을 정부가, 기업이 이용하려고만 들지 말고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함께 해결하려 한다면 최소한 이런 애환을 시시때때로 쏟아내진 않겠죠. 얼마 전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3차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아빠들의 육아휴직 수당을 200만원으로 인상한다거나 난임 가정의 지원을 확대한다는 등의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2006년 저출산 대책을 본격화한 뒤 지난해까지 투입한 예산은 80조원을 넘겼습니다. 올해 예산만 20조4600억원에 달했죠. 하지만 출생아 수는 급감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아이를 낳은 순간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가 아닐까요. 궁핍해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누릴 겨를이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명언이 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죠. 정부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강조하지만 생애주기별 엇갈린 복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맘(Mom)편 뉴스는 엄마의 Mom과 마음의 ‘맘’의 의미를 담은 연재 코너입니다. 맘들의 편에선 공감 뉴스를 표방합니다. 매주 월요일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