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 광주 FC의 2016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28라운드 경기. 광주가 0-1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이었다. ‘패트리어트’ 정조국(32·광주)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팀 동료 김민혁의 킬러 패스를 받았다. 지체 없이 날린 오른발 슈팅은 울산 골문을 활짝 열었다. 정조국의 이번 시즌 16호 골이자 K리그 통산 100호(9번째) 골이었다. 전성기가 지났어야 할 나이에 정조국은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세우며 득점왕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남기일 광주 감독은 경기 후 “오늘 득점은 본인의 의지가 뒷받침돼 가능했다”며 “본인을 내려놓고 후배들을 잘 도와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골이 터질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2016 K리그 클래식 미디어데이에서 남 감독은 “정조국이 득점왕에 오를 것이다. 많은 골을 기대해도 좋다”고 돌발 발언을 했다.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정조국은 “20골 정도 넣고 싶다”고 화답했다. 모두들 속으로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조국은 2015 시즌 FC 서울에서 정규리그 11경기에 나서 1골 도움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 감독과 정조국의 말은 현실이 되고 있다. 정조국은 이번 시즌 26경기에 출전해 16골을 넣어 티아고(전 성남 FC), 데얀(서울·이상 13골)에 3골 차로 앞서 있다.
정조국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다. 19세에 안양 LG(현 서울)에서 K리그에 데뷔했다. 연령대 대표팀과 국가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프랑스 무대도 누벼 봤다. 그러나 K리그와 국가 대표팀, 프랑스 리그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하진 못했다. 우선 K리그에선 최우수선수(MVP)에 근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국가 대표팀과는 2011년 6월 세르비아와의 친선경기 이후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0년 말 프랑스로 진출했지만 2년 동안 4골을 넣었을 뿐이다.
안산 경찰청에서 두 시즌 동안 16골 3도움(36경기)을 기록한 정조국은 2014년 9월 26일 서울로 복귀했다. 당시 서울은 5위에 머물러 있었다. 정규리그 순위 경쟁뿐만 아니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기에 바빴던 서울은 정조국에게 출전 기회를 줄 여유가 없었다. 정조국은 2014 시즌 정규리그 2경기 출장(무득점)에 그쳤다. 2015 시즌에도 박주영, 아드리아노 등에 밀려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정조국은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서울과의 인연이 끊어졌을 때 또 다른 인연이 다가왔다. 광주였다. 남 감독은 정조국에게 전화를 걸어 “너의 기술과 실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정조국의 마음이 움직였다. 열흘 만에 이적 절차가 마무리됐다.
광주는 지난 시즌 스트라이커가 없어 고전하며 B그룹 10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정조국을 앞세워 9승10무9패로 선전하고 있다. 정조국 외에 이렇다 할 스타가 없는 광주는 짧은 패스를 통해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스타일로 만만치 않은 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조국은 “나와 광주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며 “나는 도움을 받는 쪽이다. 내가 골을 넣는 과정에 모든 선수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나의 골이 아니라 팀의 골이다”며 자신의 득점을 팀 동료들에게 돌렸다.
정조국의 부활을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아내 김성은 씨와 아들 태하다. 태하는 득점왕 경쟁을 벌이던 티아고가 지난 7월 알 와흐다 FC (아랍에미리트)로 이적하자 엄청 기뻐했다고 한다. 정조국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가족에게 미안했다”며 “이번 시즌엔 내가 잘하니 가족 모두가 행복하다. 이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체면이 선다”고 기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