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형·회피형·해결형… 수사 중 극단적 선택, 화이트칼라 범죄서 잦다

입력 2016-08-27 10:38
지난 26일 자살한 이인원(69)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 당일은 그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하는 피조사자들 가운데에는 경제범죄 등 일명 화이트칼라 범죄 혐의를 가진 이들이 많다. 명예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살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 이후 2014년까지 검찰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 가운데 화이트칼라 범죄로 조사를 받던 이의 비중은 72%다. 거액의 탈세와 비자금 조성, 조직적 증거인멸 의혹을 받고 있는 롯데그룹 역시 이 계열에 속한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조직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피의자와 관계된 수많은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진다. 이러한 증거 수집 과정에서 배려형 자살, 회피형 자살, 해결형 자살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 결과다. 자신의 고통과 문제상황에 따른 부수적인 부담을 다른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좌절 저항력이 매우 약하며, 이 역시 극단적 방법 선택의 요인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소위 ‘엘리트’ 중년 남성에게서 이러한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형사정책연구원은 진단하고 있다.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쉽게 패배자로 낙인찍는 경향을 감안, 심리상담과 신변보호관 지정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은 2007년 6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피의자 불구속 수사 원칙이 강화된 이후 자살이 급증하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중 자살사건은 2009년과 2010년만 제외하면 2008년 이후 매년 두자리 수로 꾸준히 발생하는 편이다. 수사기관에 의해 신병이 구속되지 않고 풀려나온 직후에 자살이 다수 발생한다는 것인데, 검찰은 이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 전환 필요성 등을 검토하기도 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