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취직도 안 되고” 상습 절도범 전락한 20대

입력 2016-08-24 17:32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A대학교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자정쯤 빈손으로 학교에 나타난 유모(25)씨는 4시간 뒤 가방을 멘 채 캐리어를 끌고 학교를 나섰다. 다음날 아침 학생들의 도난 신고가 빗발쳤다. 현금 40만원과 노트북 4대 등이 도서관 열람실에서 사라졌다.

경찰이 CCTV를 확인해보니 유씨는 자연스럽게 열람실을 돌아다녔다. 자리에 놓여있는 가방을 자신의 것처럼 메고 여러 자리에서 노트북을 챙겼다. 당시 열람실에 있던 학생들은 아무도 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열람실은 ‘지정석 제도’로 운영돼 많은 학생들이 물건을 두고 다닌다. 하지만 학생증을 확인하는 등 출입을 제한하는 장치는 없다. A대학에서는 앞서 두 차례 절도사건이 있었는데 경찰은 모두 동일범 소행으로 봤다.

추적에 나선 경찰은 유씨가 지하철역과 버스를 탈 때 사용했던 교통카드를 일일이 조회했다. 유씨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은 화려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전, 부산 등 전국을 떠돌아다닌 것으로 나왔다. 경찰은 사용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역에서 이틀간 잠복한 끝에 유씨를 검거했다.

경찰의 신원조회 결과, 유씨는 절도 혐의 지명수배자였다. 2014년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현금 50만원과 노트북·카메라 등을 훔쳐 불구속 입건됐었다. 경찰 조사를 한 차례 받고는 충남 아산의 집을 떠나 잠적했다고 한다.

유씨는 이때부터 전국을 떠도는 노숙생활을 했다. 생활비가 필요하면 주로 대학교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 곳이 많고, 밤늦게 다녀도 의심을 받지 않는데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값비싼 물건이 많았다.

멀쩡한 20대 청년이 왜 노숙생활을 하면서 절도범으로 살아왔을까. 유씨는 군대를 전역하고 한 경비업체에서 일했다. 하지만 친한 동료에게 2000여만원을 빌려준 게 화근이 됐다. 대출을 받아 빌려줬는데 돌려받지 못했고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 직장을 그만둔 상태에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빚이 쌓여가자, 절도 행각에 빠져들었다.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취직도 안 되고 생활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24일 “신용불량자가 된 뒤로 세상을 비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절도 혐의로 지난 20일 유씨를 구속했다. 지난 2년 동안 유씨가 훔친 금품이 30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상습 절도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