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VMD팀 대리인 조모(33·여)씨는 올 초 임신 사실 확인 후 얼마 안가 유산 위험이 있어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생겨도 당연히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던 조씨에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지 고민이 시작됐다. 출산휴가는 출산 시점 3개월 전부터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4월 회사에서 임신 기간 내내 2시간씩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근무할 수 있는 임신기 단축근무제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씨는 이를 활용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근무한다. 출근 전 규칙적 아침 식사를 하고, 출퇴근 시간 교통 지옥도 피할 수 있어 임신과 일을 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남동발전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모(36·여)씨는 시간선택제와 임신부 단축근무, 육아휴직 후 시간선택제로 업무에 복귀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소위 ‘전환형 시간선택제 패키지 제도’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쓸 수 있는 관련 제도를 거의 다 활용한 셈이다. 그런 김씨도 2012년 첫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만 해도 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대비해 육아휴직을 아끼기 위해 출산휴가만 쓰고 바로 복직했다. 친정 어머니와 시누의 도움으로 겨우 버텼던 시간이었다. 3년 뒤 둘째가 생겼을 때는 공공기관 이전으로 육아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졌다. 이때 회사에 도입된 임신기 단축근로와 육아휴직, 복직후 시간선택제 전환제도 등은 김씨를 회사에 남게 해준 동앗줄과 같았다. 김씨는 “그런 제도를 활용하지 못했다면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고용노동부가 상시근로자수 5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전환형 시간선택제와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수요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10.4%가 ‘3년 내 시간선택제 전환 근무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들 중 35.6%인 4607명은 ‘20% 이상 임금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시간선택제 전환 근무를 희망(실수요자)한다’고 밝혔다.
전환형 시간선택제 활용 수요는 역시나 출산·육아 부담이 가장 큰 30대, 대리급, 여성 근로자에게서 가장 높았다. 업종별로는 여성 근로자가 많은 서비스업의 수요가 가장 높았다. 다만 여전히 직무부적합, 사내눈치, 동료 업무 과중, 전환에 따른 임금감소 등으로 인해 제도를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도 높았다. 정부의 전환 장려금 등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고용부는 이 같은 수요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날 민간기업과 11곳, 경제단체 4곳과 저출산 극복 등을 위한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등 전환형 시간선택제 확산’ 협약을 체결한다. 협약 체결에 참여한 기업은 이마트, 포스코, 신한은행, LGU+,아모레퍼시픽, CJ제일제당, KT&G, 신세계, 하나투어, 이스타항공, 동부자동차보험손해사정 등 11곳이다.
고용부는 이들 기업 사례를 통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적극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업무협약은 시간선택제 근무를 희망하는 근로자가 실제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도입 확산에 노력하고, 경제단체와 정부는 인식개선 홍보, 컨설팅 및 재정지원 등으로 적극 뒷받침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부는 이번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지역민관협의회를 통해 8개 지방고용청별로 기업, 경제단체 등과 협약을 체결해갈 계획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협약 체결 후 가진 간담회에서 “임신기․육아기 단축근무를 비롯한 전환형 시간선택제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직장만족도와 업무효율을 높여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저출산·저성장을 극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하며 “근로자 생애 주기에 따라 필요한 때에 전일제와 시간선택제를 오갈 수 있는 일·가정 양립 선순환시스템을 정착시켜 가자”고 당부했다.
고용부는 이와 함께 전 임신근로자를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등 모성보호제도 안내를 강화하고 준수 여부 등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대기업 근로자 10명 중 1명 이상 '전환형시간제 쓰고 싶다'
입력 2016-08-24 06:00 수정 2016-08-24 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