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김성훈 감독이 밝힌 하정우-세월호-그분 [인터뷰]

입력 2016-08-22 00:05 수정 2016-08-22 00:33
이병주 기자

김성훈(45) 감독의 실제 성격? 내성적이거나 진지하기만 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알고 보면 적잖은 반전의 소유자다. 조곤조곤 분명하게 할 얘기를 하면서 특유의 조크를 곁들인다. 언제 어디서 농담이 튀어나올지 도통 예측하기 어렵다.

그의 영화는 이런 실제 그와 꼭 닮았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뚝심 있게 끌고나가면서 유쾌함을 놓지 않는다. 연출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에서 작정하고 웃겼다면 ‘끝까지 간다’(2014)에선 한층 세련된 유머를 구사했더랬다.

관객과 평단의 기대 속에 선보인 ‘터널’에서 역시 재기발랄함이 돋보였다.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평범한 가장 정수(하정우)의 살기 위한 분투를 그린 작품. 생명 앞에서마저 비정해지는 재난 상황을 웃음기 있게 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김성훈 감독은 훌륭히 완성해냈다.

하정우라는 맞춤형 배우를 만났으니 날개를 단 격이었다. 틀을 깨는 전개와 과감한 연출로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더 명확해졌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김성훈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벅찬 감상을 전하자 그는 “과찬”이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저는 아직까지 부족한 점들이 보이더라고요. 칭찬을 받을만한 작품을 계속 찍고는 싶죠. 완벽한 작품들을 보면 ‘나는 이번 생에 저런 거 한번 찍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끝까지 간다’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는 등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그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김성훈 감독의 생각은 확고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는 “전작이 직선적인 이야기였던 터라 좀 더 확장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터널 원작을 만나 갈증을 채웠다. (더구나) 그 안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소재원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
“조금이 아니라 펑펑 울었어요. 우리 영화보다 1000배는 더 슬픈 것 같아요. 많이 아픈 이야기죠. 이걸 내가 영화화하면서 감내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간다’의 유머, 톤 앤 매너, 아이러니한 상황 등을 가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점끼리 잘 접목된다면 해볼 만하다 싶었죠.”

-하정우를 만나 그 유머가 잘 살아난 것 같다.
“네. 시나리오 자체도 그랬지만 하정우라는 배우를 통해 더 유머러스해지고 밝아졌죠. 하정우씨가 수많은 아이디어가 융단폭격 식으로 쏟아냈어요. 유머센스도 워낙 좋지만 끊임없이 던지는 그 도전정신이 대단한 것 같아요(웃음). 하루 종일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줘요. 정말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체육계에 박지성이 있다면, 영화계에는 하정우인 거죠(웃음).”

-하정우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의견을 내면 감독의 선을 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는데.
“선을 넘었다 싶은 게 있으면 제가 좀 당겨주면 안 넘은 게 되니까, 그런 건 상관없고요. 하 배우 자체가 어떤 선을 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타고난 친구인 거죠. 아이디어가 많다고 해서 선을 넘어가는 건 아니에요.”

-현장에서 직접 본 하정우는 어떤 배우였나.
“어떻게 끊임없이 온 몸에서 아이디어를 꺼낼까 놀라웠어요. 인간의 체력적·심리적 한계를 항상 넘는 것 같아요. 프로죠. 상당히 똑똑한 친구고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게 잘 결합된 것 같아요. 그 친구를 보면 아이 같은 부분이 있거든요. 귀엽고 개구쟁이 같고 끊임없이 장난치고 싶어 하고. 그런 면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같아요. 그런데다 이 친구는 표현법이 뛰어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제스처를 잘 쓰는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제스처는 서양에서나 익숙한 건데 이 친구는 몸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직여요. 그러면서도 절제되어 있어 식상하지 않죠. 또 준비를 너무나 열심히 해오는데, 현장에서는 그걸 다 버리고 유연성 있게 연기를 해요. ‘내가 연구한대로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다 내려놓고 그 신에 맞게 사실감 있는 행동을 하죠.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완벽해보이죠? 근데 정말 완벽해요. 당당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영화 속 상황이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이 많다. 원작이 2013년에 나왔고 그런 의도 또한 없었다고 했지만, 너무 절묘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제작발표회 때 ‘세월호를 의도했느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저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답했죠. 서로 영화를 안 본 상태이기 때문에 그때 더 많은 부연설명을 하면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건 여전히 유효한 대답이에요. 저는 시스템이 붕괴된 보편적인 재난 상황이라고 봤어요. 그럼에도, 목적성을 떠나서 (관객들에게) 그렇게 읽힌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심지어 (세월호 당시 상황과)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말까지 나오더라고요. ‘과연 내가 정말 그렇게 의도하고 찍었나’ ‘내 무의식에 그런 게 있었나’라고 한다면 그건 무의식이니 ‘맞다, 아니다’ 할 순 없겠죠. 그런데 의도적으로 단편적인 사건들을 가져온 건 분명 아니에요. 촬영을 하면서도 ‘연상이 되겠구나’ 싶긴 했지만 ‘갈 길은 가자’고 했죠.”

-극 중 여성으로 설정된 행정자치부 장관을 두고 적잖은 관객이 현직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캐스팅 회의를 하다 보니 여성이 너무 없었어요. 119 대원에 넣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러면 주체적인 역할이 아니라 수동적인 꽃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건 제가 거부를 했고…. 그러다 누군가가 장관이 여성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그때 반응이 ‘와’도 있었지만 ‘어’도 동시에 나왔어요. 저는 ‘와’를 했죠. 장관이 마지막에 ‘누구? 왜? 나?’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게 되게 귀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해숙 선배님이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귀여운 거예요. 지탄 받는 악당이 아니라 귀엽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 인물에게도 저는 애정이 있는 거죠.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인물은 각자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었어요. 물론 불안감은 있었죠. ‘큰일 날 거다, 분명 그렇게 인식될 거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21세기다. 믿는다. 우리의 진정과 진실의 힘을 믿자’고 밀어붙였어요. 처음에는 ‘그분 아니냐’며 논란이 되겠지만 다들 귀엽다고 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 싶어요.”

-생명과 그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건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해 더 뭉클하게 다가오더라.
“사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거잖아요. 하지만 실천이 안 되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저 스스로도 영화를 찍으면서 ‘너는 과연 떳떳한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생명 자체가 희망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른 게 아니라 생명이 희망이지 않나, 결국에는 인간이 희망이라는 얘기와 같겠죠. 우리는 인간이기에.”

-영화 작업을 해나가면서 추구하는 방향이나 중요시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해왔던 방향에서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아요. 최소한 네 번째 작품은 두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뭔가가 있지 않을까요? 제 유머가 철지나지 않는 한, 유머는 계속 넣고 싶어요. 그래야 이야기가 말랑말랑하게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날선 이야기를 해도 좀 용서해주고(웃음). 물론 유머가 본질은 아니죠. 방법의 문제죠.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끝까지 간다’ 했을 때도 다음에 ‘터널’ 할 줄 몰랐거든요. 모르고 있어야 더 재미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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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