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는 김 전 대표의 민생 탐방을 두 차례 동행 취재했다. 지난 13일 전북 전주와 지난 19일 충북 영동에서 김 전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를 거부하던 김 전 대표는 연이은 요청에 조금씩 속내를 열어보였다. 친박(친박근혜)계에 대해 싸움을 먼저 걸지는 않겠지만 계속 시비를 걸어온다면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 전 대표는 지난 9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비주류가 패배하면서 위기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민생 탐방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시민, 농민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으며 다시 충전되는 듯 했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열세지역인 전주에서 일부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동에서는 농민들에게 “내 죄도 내가 알지만, 국회의원들이 쓸데없는 걸로 싸워서 죄송하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세 번밖에 거론하지 않았다.
-민생 탐방을 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농민들이 북한에 개방적인 것을 보고 놀랐다. 김정은이 미친 짓을 하지만, 남한에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남한 농민들도 살고, 기아 굶주린 북한 주민들도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런 농민들의 사정도 모르고 정치를 했다니…’하는 후회와 자책이 밀려왔다.”
-시장 상인들과 농민 등 국민들을 직접 만나서 느낀 점은.
“국민들 사이에는 지역의 경계가 없지만 정치인들이 자기의 당선을 위해 그 경계를 키웠다.(그는 영호남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지역의 경계’라고 표현했다)
-민생 탐방을 하면서도 정치적인 발언을 계속했다.
“현장을 찾아 온 기자들이 민생 탐방은 취재 안 하고 정치적인 질문만 집요하게 했다. 그래서 한두 마디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한 말들은 그동안 다 해왔던 말들이다.”
-수염 때문에 말들이 나온다.
“내가 수염을 기르든, 말든 그게 왜 화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친박은 김 전 대표가 비주류 단일후보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전대가 계파 대결로 흘렀다고 주장하는데.
“학생회장 뽑는 것도 지지 의사를 밝히는데, 내가 누구를 원한다는 말도 못 하나. 대통령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드에 대한 지역 민심을 듣는다며 특정 지역(대구·경북) 의원들을 만나지 않았나. 나하고 대통령하고 같나.”
-이번 전당대회 결과를 보면 당심(黨心)이 친박을 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무더위가 심했고, 올림픽도 있어서 투표율이 낮았다.”(실제로 이번 전당대회 투표율은 지난 전당대회에 비해 7.6% 포인트 낮았다.)
-이정현 대표에게 한 마디 한다면.
“특별히 할 말이 없다.”
-현 정부는 보수적 기조를 강조하는데 어떻게 보나.
“현 정부의 보수주의는 복고(復古) 보수주의다.”(그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는 어떻게 보나.
“우 수석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진석 원내대표가 우 수석의 자진사퇴 요구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옳지 못하다. 책임있는 당직자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페이스북 말고 공식적인 회의에서 정리된 자기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올 하반기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민생 탐방과 개헌 두 가지에 집중할 것이다. 연말까지 민생 탐방을 계속할 것이다. 전국을 다 돌 것이다. 대도시도 가서 도시 빈민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여야의 극한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권력집중형 대통령제를 막아야 한다. 앞으로는 개헌 논의에 뛰어들 것이다. 개헌론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에 도전하는 데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패권주의자들이 반 총장을 업어오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대선 출마 계획은.
“노 코멘트다.”
지난 13일 밤 그는 전주의 예술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예술인들은 김 전 대표를 자신들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김 전 대표는 전주에서 활동하는 이희춘 화가의 활짝 핀 꽃 그림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림의 제목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김 전 대표는 “내 인생에서 화양연화가 이미 지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안 왔는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는 대권 도전에 대한 마지막 깊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