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골프 코스. 금메달을 향해 순항하던 박인비(28·KB금융그룹)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평소 친한 동료이자 금메달 경쟁자 리디아 고(19·뉴질랜드)와 단 한마디도 섞지 않은 채 마지막 라운드에 임했다.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라는 별명답게 1번 홀에서 18번 홀까지 시종일관 같은 표정으로 경기에 집중했다. 그만큼 한 타 한 타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는 의미다.
박인비는 전날 3라운드까지 11언더파로 단독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리디아 고와는 2타 차였다. 박인비는 3번 홀에서 5번 홀까지 3연속 버디를 낚아내며 6타 차로 리디아 고를 따돌렸다. 특히 5번 홀에서는 장기인 롱퍼트를 성공시켰지만 포커페이스는 여전했다. 홀컵에서 공을 꺼낸 뒤 손을 들어 보이는 포즈 외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10번홀(파5)과 14번홀(파3)에서는 보기가 나왔다. 흔들릴 법도 하지만 박인비는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켰다. 이어진 15번 홀(파3)에서 곧바로 버디를 잡아내며 만회했고, 17번 홀(파3) 버디로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는 공이 두 번이나 벙커에 빠졌지만 안정된 벙커샷으로 그린 위에 공을 올려놓았다. 결국 마지막 홀을 파로 마무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제서야 박인비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감격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박인비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박세리 감독과 포옹을 나눌 때도 그랬다. ‘골프여제’의 골든슬램 비결은 바로 철갑처럼 단단한 정신력이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