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없다, 관행이다” 근본없는 적정온도 28도

입력 2016-08-19 17:00

인천의 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임모(29·여)씨는 이번 여름 ‘공공기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무실에 들어와도 더위를 잊기 힘들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여름철 적정 실내온도를 평균 28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씨의 ‘생존 전략’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더위를 참기 힘든 날에는 구내식당 영양사한테 부탁하고 잠깐 냉동고에 들어가기까지 한다. 다른 직원들도 미리 얼려둔 얼음팩을 목에 감고 있거나 소형 선풍기를 이용한다. 임씨는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보다도 더운 게 과연 적정 실내온도가 맞냐”고 되물었다.

시민들도 불편을 겪는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송모(48)씨는 “가만히 있어도 덥다. 사람이 더 늘어나면 땀이 날 것 같다”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주민센터 직원도 “적정 실내온도인 28도를 맞추려다보니 민원인들의 덥다는 항의가 많다”고 했다.

정부는 공공기관들이 적정 실내온도를 지키고 있는지 매년 실태점검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기준으로 적정 실내온도를 28도로 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산업자원통상부 관계자는 “기준이 왜 28도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면서 “예전부터 관행적으로 유지돼 왔다”고 설명했다.

관련 규정 가운데 처음으로 실내온도를 규정한 것은 1980년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정부 및 정부산하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대책’으로 보인다. 이 대책은 실내온도를 ‘동절기 18도 이하, 하절기 28도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후 관련 규정은 몇 차례 바뀌었다. 1996년부터 2009년까지는 공공기관에서 여름철 실내온도를 26도까지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실내온도 기준은 다시 28도로 올랐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여름철 평균 기온은 꾸준히 오르는데 정부는 마땅한 산출근거도 없는 36년 전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사용량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건강’을 고려한 적정 실내온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온열질환자를 관리하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여름철 적정 실내온도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기후변화를 고려한 실내온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장도 19일 “평균 28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36년 전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임의적으로 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건강을 고려해 적절한 기준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판 이가현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