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위원' 유승민 "8년 뒤 모든 이들의 박수 받고파"

입력 2016-08-19 06:25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 하겠다”면서 “8년 뒤 모든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유승민은 19일 오전 2시(한국시간) IOC가 발표한 선수위원 투표 결과 1544표를 받아 총 23명 중 2위를 차지했다. 선수들의 투표로 뽑는 선수위원은 총 4명이다.

유승민은 2024년까지 IOC 위원으로 활동한다.

◇유승민 일문일답.

-당선 소감은.

“그동안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7월23일에 도착해 7월24일부터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결과 발표장에는 너무 떨려서 가지 못했다. 기쁨도 있지만 책임감이 무겁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 하겠다.”

-유력 후보군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현장에 와보니 선수들이 선거에 대해 많은 정보가 없었다. 발로 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인사를 했다. 진심으로 웃어주고 힘을 실어줬다. 어떤 선수들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밝은 웃음으로 맞아줘 힘이 났다고 하더라. 진심을 보여줬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선거 운동 기간은 어땠나.

“나를 뽑아준 선수들에게도 감사하지만 인사를 25일간 지겹게 받아준 선수들에게도 고맙다. 나도 선수를 오래해서 얼마나 민감하고 방해 받고 싶지 않은지 잘 안다. 내가 끝나는 날까지 왜 거기 서 있는 줄 모르는 선수도 있더라. 마지막 날에는 내가 투표를 해달라고 하니 '아 그래서 있었구나'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된 것 같다.”

-선수 시절 때도 그렇고 결정적인 순간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기대를 안 해주셨기에 오히려 부담감이 없었다. 한국에서 올 때부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많이 들었다. 응원해준 가족들과 친구들 덕분에 힘을 얻었다. 어쨌든 대한민국 대표로 나왔는데 어설프게 선거 활동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했다.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고 외로웠다. 끝나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다.”

-몸 관리도 쉽지 않았을텐데.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8월5일이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유세하는데 벌이 와서 쏘고 가더라. 걱정했는데 의무 선생님들이 잘 치료해줘서 컨디션 회복해 바로 유세를 할 수 있었다. 정말 긴장하고 몰두하다보니 얼굴도 타고 살도 좀 빠졌는데 몸은 안 아프더라. 어제 저녁에는 처음으로 코리아 하우스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한국 스포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텐데.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IOC와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알고 있다. 아직 행정가로서 업무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익혀서 도움이 되겠다. 개인의 영광을 떠나서 선수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겠다. 내가 만나본 1만500명 선수들은 각자의 고민이 많더라. 선수들도 관심 분야가 각기 다른데 은퇴 후 고민을 공유하자고 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위원이 됐으면 좋겠다.”

-선거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선수들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이들의 가장 큰 이슈는 도핑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었다. 과연 선수위원회가 선수를 위해 뭘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도 후보자라 구체적인 답변은 못했다. 선수들이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선수위원회가 도와줘야한다. 선수들과 위원회의 관계를 좀 더 친밀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역할을 먼저 한 후에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 듣고 뛰며 먼저 다가가겠다.”

-왜 자신을 뽑아달라고 했나.

“난 은퇴해서 시간이 많다고 했다. 너희들을 만날 시간이 충분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첫 일정이 무엇인가.

“일단 우리 집 방문을 제일 먼저 하고 싶다(웃음). 21일 오전에 총회한 뒤 선수위원회와 미팅 후 폐막식에 참석한다. 출입 카드도 원래 후보자였는데 바로 바뀌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움이 있다면.

“규정이 워낙 타이트해서 후보자들끼리도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같은 후보자들과 의지하면서 정보를 공유했다. 친구들이 응원하기 위해 14일 현지로 왔다. 내 이름을 따 팀 RSM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친구들인데 고맙다. 탁구대표팀이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은 아쉽다. (정)영식이와 (이)상수는 처음 나온 올림픽에서 잘 했는데 아쉬웠고 주세혁 선배는 마지막인데 결과가 안 좋아 안타까웠다. 그 선수들이 응원해줘서 된 것 같다. 매일 도시락 싸주신 체육회 관계자도 고맙다.”

-구체적으로 선거 운동은 어떻게 했나.

“선거 운동을 (다른 이들과) 같이 할 수는 없다. 선수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위치 중 선거에 위반되지 않는 위치가 하나 있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오가는 곳이다. 내가 처음부터 서 있었는데 다른 후보자들도 모이기 시작하더라. 선수들이 왔다 갔다 하지 않는 시간에는 서로 고충과 역할을 상의했다. 굉장히 페어플레이를 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지난 선거까지는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라.”

-아테네 금메달과 지금 당선 기쁨의 차이는.

“2004년에는 팀하고 같이 나갔다. 훌륭한 동료와 코치, 응원단이 있었다. 이번에는 비행기 타고 혼자 와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선거에 혼자 나갔다. 모든 것을 혼자해야 했다. 솔직히 하루가 너무 길고 힘들었다. 강문수 탁구 총감독님은 항상 ‘원 모어’라고 이야기 한다. 남들보다 1분, 하루, 한 달을 더 하면 분명히 된다는 것이다. 숙소로 들어가려다 선수 한 명이 보이면 못 들어갔다. 그게 아마도 선수들에게 통한 것 같다. 그때는 같이 환호했지만 이번에는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때는 기뻤다면 지금은 울컥한다. 25년 간 내 자신을 위해 했다면 지금부터는 내 커리어를 위원회나 선수들, 스포츠 발전에 헌신해야 하는 위치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왜 IOC 위원에 도전하고자 했나.

“런던올림픽 나갈 때 힘들었다. 후배와 단체전 한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다.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버틴 이유에는 IOC 선수 위원 도전 생각도 있었다. 2004년에 문대성 위원과 같은 방을 썼다. 2008년에 어떻게 했는지 보면서 꿈을 키웠다. 런던 끝나고 나는 독일에 갔는데 진종오형과 장미란은 언론에 노출이 많이 돼 자신이 없었다. 2014년에 지도자가 돼 현장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조언을 해줬다. 그래도 마지막 기회인데 나가서 가능성이 있든 없든 도전을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재결심을 해 나가게 됐다.”

-8년 뒤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정말 열심히 해서 정식 멤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명암만 선수 위원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업무를 잘 처리하는 선수 위원이 되고 싶다. 아시아인으로 IOC에 들어가서 인정을 받고 싶다. 선수들을 위해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을 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부딪혀 열심히 위원 생활을 해서 8년 뒤 모든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싶다.”

-구체적으로 느낀 고민은.

“나를 보고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선수가 50%, 인사 하는 선수가 45%다. 나머지 5%는 왜 뽑아야 하는지 설명을 해보라고 하더라. 나는 그것이 반가웠다. 5%의 선수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관심이 없는 선수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 종목 외국 선수와 친해진 경우도 많았다. 올림픽을 4번이나 출전했지만 탁구 말고는 다른 나라 선수 외에는 이야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대성 위원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그때 대단하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태권도 복을 입고 열심히 하셨다. 이번에 오기 전에 조언을 해주셨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만나고 다가가라고 했다. 그런 조언을 토대로 열심히 했다.”

-선수 유승민과 행정가 유승민은.

“선수 유승민은 눈빛이 날카로웠던 사람이다. 행정가 유승민은 눈빛이 따뜻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으면 한다.”



리우데자네이루=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