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협회에 외면당한 여자 대표팀 "우리도 국가대표입니다"

입력 2016-08-18 00:01 수정 2016-08-18 08:38

2016 리우 올림픽에서 8강에서 탈락한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이 열악한 환경에서 시합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8강전이 끝난 직후 아쉬운 플레이를 보여준 박정아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렸다. 하지만 정작 비난 받아야할 대상은 배구협회였다.

뉴스1()과 스포츠월드()는 17일 배구 대표팀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했다.

이 두 매체 보도를 토대로 배구대표팀의  8강 뒤에 가려진 현실을  재구성했다. 

1. 통역 없는 대표팀

배구 대표팀은 리우에 감독, 코치, 트레이너, 전력분석관 그리고 선수 12명까지 단 16명만 들어왔다. 이유는 대한민국 선수단에 배정된 AD카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매니저, 트레이너, 코치 등은 네덜란드 전지훈련을 마치고 모두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통역이 없는 대표팀은 대회기간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버스가 이상한 곳으로 가서 정해진 훈련 시간에 늦는가 하면 버스 사고가 나서 차 유리가 깨져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받기도 했다. 

또한 통역 없는 배구 대표팀을 대신해 중계방송을 위해 현장 답사를 왔던 모 아나운서가 기자회견에서 통역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 트레이너 1명 vs 선수 12명

전력분석관 1명은 조별리그 5개 팀과 네덜란드의 조별리그 전 경기를 비디오로 촬영하고 분석해야 했다. 전력분석관은 AD카드가 없어서 선수단 버스에 함께 탑승하지 못해 치안이 불안한 브라질 시내를 홀로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에 따르면 ‘가까운 일본의 경우 기본 전력분석 2명에 보조분석 3명이 있다’고 보도했다. 트레이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명의 트레이너가 12명의 선수를 책임져야 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3. 선수단 "표가 없어서..." 4차례 나눠 귀국

리우 올림픽 일정을 마친 선수들은 이제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16명밖에 안 되는 대표팀은 4번에 걸쳐 각자 따로 귀국한다. 대표팀은 22일 대한민국 선수단이 귀국하는 전세기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8강에서 떨어진 대표팀은 티켓이 없다는 이유로 4차례에 걸쳐 나눠서 귀국하게 됐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보호해줄 스태프 한명 없이 각자 귀국해야 하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다가온다.

4. 올림픽 기간 중에 협회장 선거를 치른 배구협회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배구협회는 새로운 대한배구협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렀다.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고군분투했던 대표팀이 러시아에게 3대 1로 패하던 지난 9일, 배구협회는 ‘서울 중앙여고 과학관에서 회장 선거를 실시해 서병문 후보가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올림픽 기간에 회장 선거 시기가 적절했는지 궁금하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7일 '욕하지 마세요, 그게 한국 여자 배구 현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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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국제성적은 남자 배구보다 여자배구가 훨씬 월등한데 대한배구협회는 프로리그 하면서 돈 좀 더 받는 남자배구만 지원합니다"라며 "매년 열리는 국제대회에 여자배구는 세계 1등급 국가만 참가하는 그랑프리 1그룹인데도 돈 없다, 스폰 없다 하면서 출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또 “반면 몇 년째 올림픽도 못 나가고 국제대회에선 이미 변방으로 밀린 남자는 매년 열린 월드리그 2그룹 경기도 꼬박 후원하고 지원하고 있다. 남녀 배구팀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2014년 여자배구 아시안게임에 금메달 땄을 때 회식을 김치찌개 집으로 잡아 화난 연경 선수가 자비로 고급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긴 적도 있다”고 말해 네티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실제로 대한배구협회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직후 인천 송림체육관 인근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뒤풀이를 해 많은 지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대한배구협회 홈페이지 화면 캡처

네티즌들은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배구대표팀이 8강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이날 대한배구협회 공식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의 항의로 서버가 다운돼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40년 만의 메달 도전에 나선 여자 배구대표팀은 지난 16일 8강에서 네덜란드에게 1대 3으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4강 진출 또한 무산됐다.

짧은 올림픽 기간 동안 보여준 국민의 관심에도 대표팀은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들에게 경기 내용을 지적하며 비난하기에 앞서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를 대표해 열심히 뛰어줘서 “고맙다“는 말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40년 만의 메달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여자배구 선수들과 이정철 감독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정작 죄송해야할 주체는 대한배구협회가 아닐까?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