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시간 생식만 가르쳐도 인정… 부실한 학교 성교육

입력 2016-08-17 17:18

지난 6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희롱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는 즉각 관련 조치를 취하고, 이 학급을 대상으로 특별 성교육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외부 성교육강사를 부를 예산이 없었다. 급기야 교사 중에 무료로 성교육을 해줄 사람을 찾기까지 했다. 학교는 어렵사리 학교폭력 관련 예산을 끌어다 외부 성교육강사를 불렀다. 이 학교의 교사는 “성교육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성교육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며 “이런 모습이 학교 성교육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학교의 성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학 생물 시간에 ‘생식’을 가르치면 이를 성교육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교육부는 1년 15시간의 성교육을 권고하고 있지만 정규교과가 아닌 탓에 다른 과목에 밀리기 십상이다. 보통 보건교과를 활용하지만 이마저도 선택과목이라 한계가 분명하다.

화장실 사용법이 성교육?

보건교사들의 단체인 보건교육포럼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8일까지 전국 보건교사 210명을 대상으로 학교 성교육 장애요인을 조사한 결과 ‘공식적인 보건교육으로서 성교육 시간 확보의 어려움'이 48.6%로 1위를 차지했다고 17일 밝혔다. 성교육 15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교육부는 지난해 ‘성교육 표준안’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구멍이 많다. 표준안은 성교육에 관련교과를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교사들은 이 때문에 ‘편법시수’가 정당화됐다고 지적한다. 이 교과, 저 교과의 계획안을 짜깁기해 15시간 성교육 시간을 편성하지만, 실제로는 진행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초등학교 보건교사 김미경(48·여)씨는 “기술가정 교과에서 5시간, 보건교과에서 5시간, 과학교과에서 3시간을 배정하는 식으로 15시간을 채우는 성교육은 체계적일 수 없다”며 “수업 내용 중에 화장실 사용법이 나와도 성교육을 한 걸로 인정되곤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여고 보건교사는 “성교육을 할 시간이 없어서 진로과목 수업시간을 빌려서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성에 눈뜨는 나이 낮아지는데

성교육은 허술한데 정작 성에 눈뜨는 나이는 어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관계를 해본 청소년의 ‘첫 경험’ 연령은 평균 13.2세였다. 2010년 조사 때 13.6세보다 더 낮아졌다.

반면 성교육 등을 통해 전달되는 성(性)정보는 부족하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이하 아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사이버 성상담 사례 314건 가운데 ‘성지식, 정보부족’(30.9%) 관련 상담이 가장 많았다.

정규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대학교 2학년 여성 A씨는 올해 초 “남자친구가 성기를 만진 손으로 제 엉덩이를 만졌는데 임신이 됐을지 모르겠다”며 성교육상담전문기관에 두 차례 상담을 요청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여고생이 출산 예정일을 모른 채 지내다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자 아기를 살해한 일도 있었다.

아하센터의 이명화 센터장은 “성적으로 무지한 10대와 20대가 많다”며 “성교육이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보건교육포럼의 우옥영 이사장은 “외부 성교육기관과의 협업이 중요하다”며 “성문화센터의 자원을 활용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성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