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정명훈(63)과 서울시향의 호흡은 여전했다. 롯데콘서트홀 개관공연을 앞두고 16일 오전 언론에 공개된 첫 리허설에서 서울시향은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손끝에 맞춰 부지런히 선율을 뽑아냈다.
19일 개관공연에서 서울시향은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 그리고 롯데콘서트홀이 위촉한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연주한다. 개막공연은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빼고 도이치그라모폰의 실황 앨범으로도 발매된다. 이날 리허설은 연주 실황 앨범 준비를 위한 녹음도 병행됐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향의 송년 레퍼토리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이후 서울시향을 8개월만에 지휘하는 정 전 감독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며 단원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선율을 주문했다. 입으로 선율의 템포와 강약을 조절하는 정 전 감독의 습관도 여전했다. 정 전 감독은 또 이날 연주의 녹음을 진행하는 프로듀서 마이클 파인, 롯데콘서트홀 음향을 설계한 도요타 야스히사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좀더 나은 소리를 찾기도 했다.
정 전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은 훌륭한 편이다. 홀의 정확한 특징을 알려면 1년 정도 지나야 하는데다 현재 조정할 것도 많지만 충분히 좋은 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홀이 생긴 것이 감사하다”면서 “하지만 홀 자체보다 연주자들의 기량이라고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이나 베를린 필하모닉 홀 등에서 지휘하면서 느낀 것은 연주자가 먼저 제대로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개막공연으로 세계초연하는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에 대해 그는 “일단 연주하기가 너무 힘들지만 오케스트라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진 선생이 우리를 위해 써준 데 대해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진은숙은 이 작품을 10년간 서울시향의 음악적 발전을 함께 해온 정명훈과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헌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사임 이후 예술감독 공백이 길어지면서 서울시향의 연주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년간 서울시향은 엄청난 노력끝에 음악적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서울시향을 비롯해 어느 오케스트라에서도 책임이 너무 무거운 예술감독을 맡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서울시향이 부른다면 언제든 달려와서 돕겠다. 서울시향만이 아니라 한국 클래식계에서 나를 찾는다면 상황이 허락하는한 객원지휘자로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인터뷰에서는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의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진행 중인 검찰 조사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말할 가치가 없다.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 다시 말하자. 그때 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시향이 그동안 지독한 피해를 봤다. 다만 개인적으로 배운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어린 시절 유학을 떠나 외국에서 주로 생활해온 그는 오해를 부르는 자신의 화법에 대해 이날 해명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가끔 보통 사람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단어를 구사하는가 하면 영어를 자주 섞어 쓴다.
그는 “최근 밤늦게 검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분들에게 불쌍하다고 했는데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하더라. 솔직히 한국말 때문에 힘들다. 영어가 제일 편하다. 그리고 불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순이다. 한국에서의 인터뷰가 힘들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많다는 걸 이해하고 이렇게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