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국제인도법은 전쟁 중이라도 의료진이나 환자를 공격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굳이 법이 아니어도 민간 의료진을 공격해선 안된다는 건 국제사회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주요 분쟁지에서 대치가 격해지면서 그런 원칙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 전쟁터 의료구호 활동의 상징적 존재인 ‘국경없는 의사회(MSF)’가 최근 겪은 수난은 ‘전장(戰場)의 잔악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MSF는 “공습을 우려해 오래 전에 압스병원의 위치정보를 정부군과 반군 양측에 통보했다”면서 “병원인줄 알고도 공격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예멘에서는 지난 1년새 MSF 연계병원 4곳이 공격을 당했다.
MSF에 대한 공격은 시리아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지난 6일 시리아 북부 이들립 지역에서 MSF 연계병원이 공습을 당해 의료진 4명을 포함해 13명이 사망했다. 지난 4월말에도 북부 도시 알레포의 MSF 연계병원이 공습으로 파괴되고 의사 2명을 포함해 14명이 숨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쿤드즈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MSF 의료진 12명과 환자 10명이 목숨을 잃는 등 아프간에서도 MSF는 자주 공격대상이 됐다.
MSF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전 세계 분쟁지에서 공격을 받은 MSF 연계병원은 80곳이다. 공격으로 의료진이 최소 100명 숨지고, 환자와 보호자 130명이 사망했다.
병원을 공격하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공습을 피해 군인들이 병원으로 숨는다고 의심하거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인 병원을 없애 적군이나 적에게 협조하는 민간인이 결국 떠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공격하는 것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