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정명훈 선생님과 서울시향에게 헌정합니다.”
작곡가 진은숙이 오는 19일 롯데콘서트홀의 개관 기념공연에서 세계 초연되는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에 대해 작곡 과정과 소회를 처음으로 밝혔다.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곡가로 수십년간 일하면서 해외 오케스트라나 콘서트홀의 위촉을 많이 받았지만 한국에서 위촉을 받아 세계 초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에서 세계초연을 앞뒀을 때와 비교해 지금이 훨씬 긴장되면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0년간 서울시향의 음악적 발전을 위해 함께 고생해온 정명훈 선생님, 서울시향 단원들에 대한 내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롯데콘서트홀이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미국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은숙에게 공동위촉한 작품이다. 롯데콘서트홀이 메인 커미셔너이기 때문에 세계 초연을 하게 됐다. 필하모니아는 2018년 이 작품을 유럽 초연하고, 뉴욕필은 2019년 미국 초연을 예정하고 있다. 앞서 서울시향이 캐나다 몬트리올 심포니, 독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중국 베이징음악제와 공동위촉해 아시아 초연한 ‘로카나’의 경우 메인 커미셔너인 몬트리올 심포니가 세계 초연을 한 바 있다.
그가 롯데콘서트홀로부터 작곡 의뢰를 처음 받은 것은 201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의뢰를 거절했던 그는 고 김주호(1960~2013) 롯데콘서트홀 초대 대표의 끈질긴 요청을 받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롯데콘서트홀 개관이 2014년 예정이었다. 대개 해외에서 4~5년전에 작곡을 의뢰하는 것과 비교해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게 작곡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마음을 바꿔가던 즈음 김 대표님이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김 대표님 생전에 확실하게 답을 못드린 것이 아직까지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롯데콘서트홀의 위촉을 받아들인 그는 개관의 의미를 담은 작품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경우 실제로 곡을 쓰기 시작하면 빠른 편이지만 그 전까지의 과정이 긴 편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천문학으로부터 우주와 인간에 대한 테마를 떠올렸다.
그는 “작곡을 하다가 내 무능력 때문에 자주 초라하고 비참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그때마다 천문학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내가 느끼는 절망과 고통이 우주에서 보면 하찮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천문학을 계속 공부하다보니 음악과도 깊은 연관성을 발견하게 됐고 작품 주제에도 영향을 받게 됐다”면서 “이번 작품도 제목부터 천문학과 관련이 있다. 우주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별들에서 온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서울시향을 둘러싼 문제로 고통받으면서 한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려고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도 결국 우주에서 보면 티끌같은 인간들의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대편성 관현악, 혼성합창, 어린이합창, 파이프오르간이 들어가는 대규모 작품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오페라를 빼고는 가장 규모가 크다. 그는 “평소 오르간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오르간이 들어간 작품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마침 롯데콘서트홀에 좋은 오르간이 설치가 된데다 작품의 내용과 잘 맞아서 사용하게 됐다”면서 “12곡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각각 12개의 시가 합창 가사로 사용돼 있다. 남편(핀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기획자 마리스 고토니)이 인간과 우주에 대한 테마와 관련해 150여 편의 시를 찾은 뒤 내가 다시 12개로 압축하는 과정을 겪었다. 시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곡을 붙여 망가뜨리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현대음악이지만 내가 쓴 작품 가운데 이해하기에 가장 수월해서 일반 관객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이 작품을 작곡하는 동안 이렇게 무대에서 연주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준비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롯데콘서트홀 개관이 올해로 연기되면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