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속 초악당들을 실사(實寫)화해 총결집시킨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역할 필요도 없이 글자 그대로 직역해 ‘자살특공대’라고 하면 될 걸 왜 굳이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 제목으로 썼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가 비평가들의 전반적인 혹평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영화를 깎아내리는 비평가들과 영화를 옹호하는 팬들의 격렬한 ‘싸움’ 속에서 기록적인 흥행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팬들의 승리다.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에 1억3300만달러를 벌어들여 8월 흥행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세계시장에서도 1억9000만달러의 기록적인 수입을 올렸다.
사형수급 초절정 악당들을 모아 일종의 ‘버리는 카드’ 식으로 또 다른 악과 대결시킨다는 점에서 1960년대의 흥행거작 ‘특공대작전(The Dirty Dozen, 1967, 로버트 올드리치 감독)’을 21세기판으로 만든 듯한 게 이 영화다. 특공대작전은 어차피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흉악범 죄수 병사들로 특공대를 꾸려 이들에게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자살임무를 수행케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동일하지만 영화적 재미라든지 완성도, 캐릭터 구축 측면에서 이 영화는 특공대작전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이처럼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중요한 요인 하나는 신 스틸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조커와 할리퀸을 들 수 있다. 각각 자레드 레토와 마고트 로비가 연기한 이 두 악당과 그들 간의 로맨스-슈퍼 악당들에게는 대단히 희귀한-가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는 것. 특히 이 영화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여자악당 할리퀸은 수렁에 빠질 뻔한 영화를 건져낸 최고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한데 관객에게 익숙한 배트맨의 숙적 조커도 다소 손색은 있지만 그에 못지않다.
이렇게 조커가 또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자 미국의 권위 있는 연예지 버라이어티는 많은 배우가 연기한 역대 조커의 랭킹을 매겼다.
먼저 5위. 자레드 레토. 그는 좀비처럼 분장한 죽은 눈과 금속을 씌운 이빨,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다 역대 조커 중 가장 냉혹하게 살인을 즐기는 면모를 과시하는 등 과연 악당중의 악당을 연기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새로운 조커를 창조했다고 칭찬받았으나 버라이어티는 그를 기껏 5위에 올려놓았다. 악당들이 득실거리는 영화에서 악당을 연기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악당을 부각시키는 ‘악마적 회심의 한 방’인데 그게 부족했다는 것. 그나마 레토의 조커를 돋보이게 한 것은 슈퍼악당으로서는 희귀한 러브라인(할리퀸과의) 때문이었다고.
4위는 목소리 출연이다. ‘배트맨과 저스티스 리그’ 등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기타 관련 비디오 게임에서 조커 목소리를 연기한 마크 해밀. 잠깐, 마크 해밀이라고? ‘스타 워즈’에서 영웅 루크 스카이워커를 연기한 그 배우? 그렇다. 그 해밀이다. 처음 그가 목소리로 악의 화신이라고나 할 조커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더욱이 이미 많은 유명배우들이 그 역을 거절한 다음이었으니. 그러나 해밀은 오히려 선한 영웅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자신이 악을 연기한다는 데 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악역의 롤 모델로 삼은 것이 한니발 렉터였다고. 일부 팬들은 해밀의 조커를 역대 최고라고 평하기도 하나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스타 워즈’ 팬들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버라이어티의 분석이다.
다음 3위는 다소 의외다. 팀 버튼판 ‘배트맨(1989)’을 온전히 자신의 영화로 만든 잭 니콜슨. 사실 악당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주인공을 제치고 영화를 ‘훔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니콜슨의 조커는 그 정도를 넘어 영화를 아예 ‘먹어치웠다’. 오죽하면 영화가 ‘배트맨’ 아닌 ‘조커’로 불려 어색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으랴. 그는 조커 역할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당을 창조했으며 그를 능가할 악역은 없다는 평을 받았다. 1위를 차지했어도 모자랄 판에 겨우 3위라니. 니콜슨은 앞서 ‘샤이닝(1980,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서 보여주었던 광기 어린 악인 연기를 조커를 통해 극단까지 밀고나갔다. 이 영화에서 어둠의 상징 박쥐는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의 것이었다.
2위 역시 의외다. 특히 한국 관객에게는. 아담 웨스트가 배트맨으로 나온 TV시리즈(1966~1968, 한국에서도 방영됐었다)의 조커 세자르 로메로. 원래 1930년대부터 남유럽, 또는 중남미계의 로맨틱한 멋진 사나이를 일컫는 ‘라틴 러버’의 한사람으로 활약해온 할리우드의 베테랑 배우인 그는 조커로 출연할 당시 이미 60세였다. 그래도 그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급진적인 조커를 연기했다. 머리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눈알을 굴리면서 높고 새된 히스테릭한 목소리를 구사하는가 하면 미친 듯한 웃음소리 등으로 오페라적인 화려함을 조커에게 불어넣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후 모든 조커 연기의 기준을 세웠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음에도 2위다.
그럼 1위는? 그렇다. 누구라도 예상했듯 ‘다크 나이트(2008)’의 히스 레저다. 레저의 조커는 다른 모든 조커들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한다. 새디즘의 순수한 즐거움이다. 그의 조커 연기가 활력 있고, 무섭고 또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즐거움 뒤에 감춰진 아픔, 아픔 뒤에 숨겨진 능글거림, 그리고 또 그 뒤에 숨겨진 광기 때문이다. 레저의 조커 연기는 사이코적인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는 의미에서 말론 브랜도에 필적한다. 그는 악을 매혹적이고 영원한 그 무엇으로 만들었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83>조커의 랭킹
입력 2016-08-15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