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람이 분다. 오늘은 북쪽에서 불고, 내일은 남쪽에서 불겠지”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공연 내내 이일화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민들레 바람되어’는 살아있는 남편 ‘중기’와 죽은 아내 ‘지영’의 엇갈린 대화로 구성된 작품. 이일화는 남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오지영 역을 맡았다.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만 남편과는 소통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이일화는 그의 인생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엄마의 잔상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응답하라 1988’에서 이일화는 퍼머머리에 몸배바지를 입고 구멍난 양말까지 불사하는 모성의 아이콘으로 출연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강인함과 이웃을 향한 넉넉한 인정을 보여줬다.
‘민들레 바람되어’의 오지영으로 변신한 이일화는 자신의 무덤을 찾는 순정파 남편을 향해 먼저 세상을 떠난 미안함, 남겨진 이를 향한 연민으로 대사를 칠 때마다 슬픔이 베여있다. 남편의 직장생활, 재혼한 아내에 대한 이야기,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 등 남편의 털어 놓는 일상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가운데 이일화는 생전에 소통할 수 없었던 남편에 대한 원망,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남편에 대한 위로, 딸에 대한 애틋함 등 다양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남편을 반갑게 반기다가도 그의 늙어가는 모습에 회환과 그리움이 겹쳐 눈물이 흐른다.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툭툭 건드린다. 관객들의 눈시울도 어느덧 붉게 물들어 있다. 올해로 데뷔 25년차인 이일화의 연기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일화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 여러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무대에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 공연은 늘 설레고 행복한 작업이다. 이 작품을 하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연극을 하면서 소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가까이 있을 때는 존재 자체로 감사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 나중에 부모, 배우자, 친구가 떠나고 나서 후회한다. 평상시 소통을 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관객분들도 가족과의 진정한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일화는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를 하면서 MBC 새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에 캐스팅돼 촬영에 한창이다. 하반기에는 영화 ‘천화’ ‘아빠는 딸’ ‘원라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