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의 가출소녀는 어쩌다 부산행 KTX에 오르게 됐을까. 좀비 바이러스를 태운 열차가 떠난 뒤 서울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000만명이 궁금해 했을 이야기.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갈증을 해소할만한 힌트가 여기에 있다.
‘부산행’의 프리퀄(원작 이전의 사건을 다룬 속편) 작품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10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실사영화로의 화려한 외출을 마친 연상호 감독이 제 솜씨를 발휘했다.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상호 감독은 먼저 부산행 천만 흥행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부산행을 선보인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예상치 못한 반응 덕분에 함께 고생한 스태프·배우들과 행복했다”고 얘기했다.
‘서울역’은 ‘부산행’보다 참혹하다.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이를 바라보는 연상호 감독의 시선에는 한껏 날이 서있다. 결말이 남긴 충격과 여운이 꽤 오래 간다.
집을 나와 탈선한 뒤 남자친구 기웅(이준)과 여관방을 전전하던 소녀 혜선(심은경)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둘이 다툰 날 공교롭게도 사건이 벌어진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노인이 퍼뜨린 의문의 바이러스로 인해 길거리 여기저기 좀비들이 날뛰는 상황. 혜선의 행방은 묘연하고, 때마침 아버지 석규(류승룡)가 찾아와 기웅과 함께 혜선을 찾아 나선다.
기꺼이 더빙에 참여한 류승룡은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서 실사영화보다 현실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그림을 보며 더빙하는 게 아니라 녹음을 먼저한 뒤 그림을 입히는 방식이 독특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산행’에서 첫 감염자로 카메오 출연한 심은경은 “부산행 좀비 연기보다 서울역 더빙이 좀 더 어려웠다”며 “더빙은 자주 접하지 못한 분야이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실감나게 캐릭터 목소리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아이돌 출신 배우 이준은 ‘부산행’에 출연하지 못한 아쉬움을 귀엽게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부산행을 보면서 심은경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부럽더라”면서 “세상에 있는 좀비영화는 거의 봤다고 할 수 있을만큼 좀비영화 팬이다. 부산행의 좀비를 보고 동작을 따라 해봤는데 잘 되더라. 저도 관절 잘 꺾인다. 앞으로 그런 역이 있으면 꼭 시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애니메이션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성을 잃은 이들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단순히 좀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희망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심은경)
‘부산행’과 ‘서울역’은 한 짝이라는 게 연상호 감독의 말이다. 그는 “서울역이 개봉하면서 부산행이라는 영화의 내적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며 “예산도 표현 방법도 다른 영화가 하나의 짝으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건 연출자로서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의 비관적인 엔딩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사회를 살아간다면 다시 무언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연상호 감독)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