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입양인데… 방문조사 포스트잇 붙인 복지부 공무원

입력 2016-08-11 00:08

인천에서 올해 4세가 된 입양아를 키우는 A씨는 지난 6월 구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양육수당을 받는 입양가정에 대한 방문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언제가 괜찮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전례가 없었지만 구청에서 하는 일회성 조사라고 생각한 A씨는 아이와 함께 공무원을 맞았다.

하지만 방문조사가 일회성이 아니라 아이가 16세가 될 때까지 매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A씨는 아이를 ‘비밀입양(주위에 입양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입양)’한 경우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 괜찮지만 구청에서 매년 찾게 될 경우 아이나 주변에 입양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 A씨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입양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매년 방문조사를 하면 내 뜻과 무관하게 아이가 알 수밖에 없어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월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낸 ‘입양가정 방문조사 지침’이 입양가정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끝에 철회된 사실이 10일 뒤늦게 확인됐다. 입양가정의 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양육수당을 신청한 입양가정에 대해 1년에 2회 이상 가정조사(1회는 반드시 가정방문)를 실시해 양육 여부를 파악하도록 각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 보냈다. 2014년 발생한 해외 입양아 김현수군 사망사건과 관련해 국내 입양가정에 대한 양육 실태를 점검한다는 차원이었다.

양육 실태를 점검한다는 정부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침은 시행 초기부터 반발을 불러왔다. 비밀입양 가정이 여전히 많은 국내 현실에서 일괄적으로 방문조사를 실시할 경우 가족 의사와 무관하게 입양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실제 입양가정 모임 등에 따르면 지방에서는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했다가 가족을 만나지 못하자 ‘포스트잇’을 붙여 방문 사실을 알리는가 하면 이웃에 해당 가정에 대한 내용을 묻고 다닌 경우도 있었다.

공개입양 가정 역시 상처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산에서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를 공개 입양해 키우고 있는 B씨는 입양가정만 방문조사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방문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청에 전달했다. 아이가 방문조사 과정에서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는 것이다. B씨는 “아이 입장에서는 국가가 하겠다는 것을 엄마가 반대하니 스트레스를 받은 거 같다. 아이가 ‘경찰이 와서 우리 잡아가면 어떻게 해’라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정부는 입양가정에서의 반발이 이어지자 지난달 28일 각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 보내 방문조사를 결국 철회했다. 복지부 담당자는 “입양가정이라 비밀보장 등에 유의하면서 조사를 하라고 했지만 일부 공무원들이 그런 점을 소홀히 해 민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지침은 철회됐지만 입양가정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입양가정 모임의 관계자는 “범죄사실 조회를 비롯해 엄격한 심사 끝에 입양이 이뤄지는데, 정부는 여전히 입양가정을 친자가정이랑 다르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