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멜로킹, 박해일 “매너손? 그걸 보셨다니” [인터뷰]

입력 2016-08-10 06:30 수정 2016-08-10 06:30
쿠키뉴스 제공

날카로운 듯 부드러운, 서늘한 듯 따스한. 한 가지 형용사로 담아낼 수 없는 그 미묘함이 배우 박해일(39)만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미소 띤 얼굴에도 남모를 사연이 있는 듯하다. 어떤 연기를 하든 늘 풍부한 감성으로 전달되는 이유다.

그래서 멜로에 유독 강하다. 표정 변화만으로 다양한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싱그러움과 처연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박해일은 가능하다. 이런 유니크함 때문에 오랜 기간 수많은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꼽혔는지도 모르겠다.

‘최종병기 활’(2011) ‘은교’(2012) ‘제보자’(2014) 등 최근작에서의 개성있는 캐릭터도 좋지만, ‘국화꽃 향기’(2003) ‘연애의 목적’(2005)에서 선보인 ‘현실 남친’의 모습이 그리웠던 터였다. 지난 3일 개봉한 ‘덕혜옹주’는 이런 목마름을 조금 채워줬다. 극 중 일본으로 강제 망명된 덕혜옹주(손예진)을 귀국시키기 위해 애쓰는 독립투사 김장한 역을 맡았다.

영화는 우리의 쓰라린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치욕적이었던 그 시절, 나라를 빼앗긴 이들의 설움과 고통을 담아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 작품이기에 딱딱하진 않다. 두 주인공 사이에 세밀한 감정 흐름이 감지된다. 직접적인 러브라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간질간질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허진호 감독은 워낙 감정선을 중요시하고 남녀 구도에 대한 명확한 시선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며 “인물 사이 미묘한 거리를 두고 거기서 감정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반가운 건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었던 박해일표 멜로. 이 얘기를 건네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집 나갔다 돌아온 사람처럼 왜 그러세요(웃음).”

박해일은 “허진호 감독님 스타일대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다”며 “그 과정에서 시대가 영화적 장치 역할을 했다. (손)예진씨와 저 사이에 시대라는 캐릭터가 하나 더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직설적이지 않아 더 애틋했던 장면이 몇 있다. 일부는 박해일의 아이디어로, 어떤 건 허진호 감독의 제안으로 완성된 신들이다.

먼저 극 중 덕혜옹주가 일본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마치고 차량에 올라탈 때, 문에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김장한이 손을 대주는 신은 박해일의 애드리브였다. “하하하. 옹주님에 대한 배려였죠. 아, 그걸 보셨다니.”


반면 김장한이 총상을 입고 위독한 상황에 덕혜옹주가 응급조치를 한 뒤 함께 누워 체온을 나누며 잠드는 신은 허진호 감독의 의견이 많이 들어갔다. “제 코트를 벗어서 (손)예진씨에게 덮어줄 때 소매 부분을 머리맡에 대어 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바닥이 거칠었거든요. 여자 분들이 그런 거 좋아하나요? 전 그 생각까진 못했거든요. 허진호 감독님다웠어요. 김장한이 곧 허진호였던 것 같아요(웃음).”

김장한은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허구의 캐릭터다. 영화에는 그의 전사 등 구체적인 배경 설명이 생략됐다. 박해일은 “초반 시나리오에는 김장한이 형무소에서 나오고 고국으로 돌아가 기자가 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중에 빠졌다”며 “김장한은 오로지 덕혜에게만 향해있다. 자신의 삶까지도 최대한 감추고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되게 매력적으로 읽혔어요. 김장한 캐릭터도 기존 작품에서의 경험을 잘 융화시켜 다채롭게 해볼 수 있는 지점이 꽤 많이 보였어요. 재미있겠다는 호기심이 들었죠.”


박해일이 작품을 선택하는 1순위 기준은 “강력한 호기심”이라고 했다. 그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촬영하고 개봉하고 홍보하고 코멘터리하는 것까지가 영화의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요. 작품을 대하는 직관적인 호기심이 저에게는 큰 것 같아요.”

영화 이외의 활동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인지 괜스레 뜸한 느낌이 든다. 매년 한 작품 이상 꾸준히 찍고 있었다는 게 반전 아닌 반전. “결과물 사이 텀이 있을 뿐이지 계속 하고는 있거든요? 적어도 이 정도로는 꾸준히, 이런 패턴으로 가고 싶어요. 반보(半步)라도 더 가자는 입장이에요.”

더 자주 보고 싶어 하는 건 욕심일까. 반보 말고 한 보 더 가주면 안 되는 걸까. 아직 별 계획조차 없다는 차기작이 벌써부터 궁금한 걸 어쩌나.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