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김성훈 ‘핑’ 하정우 ‘퐁’…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입력 2016-08-03 18:24
뉴시스

두 명의 김성훈이 제대로 만났다. 김성훈(45) 감독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하정우(본명 김성훈·38)는 마음껏 뛰놀았다. 감독이 준비한 묵직한 메시지를 스리슬쩍 보는 이의 가슴 속에 밀어 넣은 건 배우의 몫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영화 ‘터널’의 중심 스토리는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평범한 가장 정수(하정우)의 분투다. 위태로운 상황에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하정우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3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터널’ 기자간담회에서 김성훈 감독은 “제 스스로 2시간 내내 무겁고 깜깜한 영화를 감내한 자신이 없어 유머를 넣었다”며 “웃음이 암을 치료하지는 못해도 버티는 힘은 준다고 하지 않나.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유머가 있으면 극 전달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 중 정수가 살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동안 터널 밖에서는 그의 구조를 둘러싼 미묘한 상황이 펼쳐진다. 구조를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아내(배두나)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구조대장(오달수)의 얼굴에는 불안과 근심이 한 가득이다. 이들의 뜨거운 의지와 달리 세상의 시선은 점점 싸늘하게 식어간다.

하정우는 흔들림 없이 제 역할을 해냈다. 상대역 없이 홀로 연기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그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축적한 경험은 허투루 사라지지 않았다. 적재적소에 애드리브를 곁들인 센스도 빼어났다.

하정우는 “시나리오에서부터 캐릭터가 잘 짜여있었다.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었다”며 “실제 나에게 대립시켜 보니 하루 종일 울기보단 마음 둘 걸 찾고 적응해나갈 것 같더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때그때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상황이 결코 낯설지 않다. 생명이 사그라지는 상황에도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이기심이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김성훈 감독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벌어진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며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보거나 만드는 걸 즐긴다”고 얘기했다.

세월호 참사와 자꾸만 겹쳐 보이는 게 개인적인 착각은 아닌 듯하다. 구조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부의 무능함과 ‘보여주기식’ 의전이 진한 씁쓸함을 자아낸다. 김성훈 감독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 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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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점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는 “전 대범하지 않고 귀신도 무서워하며 귀신영화를 보면 밤에 화장실도 못가는 사람”이라는 농을 먼저 던졌다. 이어 “풍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있다. 또 어느 사회든 그런 풍자에 대해 베풀어줄 아량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성훈 감독은 “결국은 단순한 얘기다.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구상에는 60억에 달하는 생명들이 있다. 우리 모두 그런 걸 까먹고 있지 않나 싶다”고 얘기했다. 시원한 재미와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