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전사자 부모를 조롱한 트럼프… 지지율 다시 역전

입력 2016-08-01 17:33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가 지난달 29일 콜로라도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주말 트럼프는 이라크전에서 숨진 전쟁영웅의 가족을 존중하는 미국의 정치·사회적 금기를 깼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무슬림인 참전용사 부모를 조롱했다가 당 안팎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민주당 전당대회 흥행 효과를 업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지지율도 역전됐다.

이라크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인 변호사 키지르 칸과 아내 카잘라 칸이 지난달 28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무슬림 입국금지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004년 이라크에서 자살폭탄 공격에 목숨을 잃은 후마윤 칸 대위의 아버지 키즈르 칸은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연사로 나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공약을 비판했다. 칸은 “트럼프는 미국을 위해 희생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7월 31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애시랜드 유세를 위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잇따른 실언으로 기세가 오른 클린턴은 유세버스를 타고 러스트벨트(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공략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31일 트위터에 “칸으로부터 맹공을 받았다. 나도 대응할 수 있지 않냐. 이라크전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클린턴이지 내가 아니다”고 썼다. ABC방송 인터뷰에선 민주당 전당대회 때 칸 대위의 어머니 가잘라가 남편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아마도 발언이 허락되지 않은 모양”이라고 빈정댔다.

키즈르 칸이 희생을 운운한 것에 대해선 “난 아주 열심히 일했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희생을 했다”고 반박했다.

유세 버스 앞에서 지지자와 사진을 찍는 클린턴. AP뉴시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전사자의 부모를 공격하고 조롱한 트럼프는 즉각 거센 역풍에 휩싸였다. 키즈르 칸은 “트럼프는 검은 영혼을 지녔고, 그래서 이 나라의 지도자로 부적합하다”고 비난했다. 아내가 무대에서 아무 말도 못한 것에 관해선 “아들 사진도 제대로 못 쳐다볼 정도로 여전히 비탄에 빠져 있기 때문”라고 설명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도 “칸 대위는 미국의 영웅이다. 그와 가족의 희생에 고마워하고 있다”며 트럼프 비판에 가세했다. CNN방송은 “트럼프의 이번 발언으로 공화당 지도부는 계속 트럼프 편을 들어줘야 할지를 놓고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클린턴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 클린턴은 당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해 푸틴을 만났다. AP뉴시스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지지율 조사에서 클린턴을 제쳤던 트럼프는 민주당 전당대회 효과로 다시 역전을 허용했다.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가 지난달 29~30일 실시한 조사에서 클린턴은 43%의 지지를 얻어 40%에 그친 트럼프를 3%포인트 차로 제쳤다. 자유당 게리 존슨 후보까지 포함된 조사에선 클린턴이 5% 포인트 차로 트럼프를 앞섰다.

CBS방송과 유고브가 경합지역 11곳에서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선 클린턴 43%, 트럼프 41%였다. 민주당 전당대회 다음날인 29일 나온 로이터통신과 입소스 여론조사에선 클린턴 41%, 트럼프 35%로 격차가 6%포인트에 달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