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 “지금은 악역 흐름… 코믹 올 때가 됐어” [인터뷰]

입력 2016-08-01 00:01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범수(46)만큼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배우도 드물다. 바라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코믹함, 미소 한 방에 가슴 설레는 부드러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얄미움까지 오목조목 담겨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꺼내놓은 건,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악랄함이다.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첩보작전을 벌였던 숨겨진 영웅들을 조명했다.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의 빛나는 공로 뒤에는 장학수 대위(이정재)를 필두로 한 우리 첩보부대의 눈물겨운 희생이 있었다는 메시지. 이범수는 악역을 자처했다.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 역을 맡아 냉혹함의 끝을 보여줬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범수는 “악역은 악역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면서 “음식에 비유하자면, 자극적인 게 몸에는 안 좋지만 맛있잖나. 자주 먹을 수는 없지만 입맛 없을 때 한두 번 찾게 되는 그런 느낌”이라며 웃었다.

“출연을 결정할 때 망설이지는 않았어요. 제가 워낙 전쟁영화를 좋아해서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매력도 있더라고요. 재미있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했죠.”


보통의 경우는 악역이라도 그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을만한 여지를 주곤 한다. 하지만 림계진은 별다른 전사(前史)가 없다. 그저 공산주의자로서 자신의 신념에 사로잡혀있을 뿐이다. 인물을 연기할 때 변주를 줄만한 지점이 없어 배우로서 아쉽지 않았을까.

이범수는 “물론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평면적이라 할지라도 좀 더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며 “림계진은 후자에 해당했다”고 설명했다.

“입체감이 없는데 선명함까지 없으면 안 되잖아요. 실제로 초반 시나리오에는 림계진이 고뇌하는 사상가이자 엘리트였어요. 한채선(진세연)과의 러브라인도 있었고요. 근데 그렇게 되면 장학수와 너무 겹치는 거죠. 그래서 지금 버전으로 바뀌게 된 거예요. 그리고 림계진이 설명적이어서도 안 됐어요. 그에게 어떤 사연이나 가족사를 만드는 순간 캐릭터 자체의 힘이 떨어지게 되니까요.”

이범수에게 센 캐릭터란 결코 낯설지 않은 분야다. ‘짝패’(2006) ‘신의 한 수’(2014) 등 영화와 JTBC ‘라스트’ 등 드라마에서 쌓은 두터운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악역 연기는 늘 정답이 없고 어렵다”는 게 겸손한 그의 말이다.


영화는 다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평단에선 “애국심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식의 혹평이 있었던 반면 관객들 사이에선 “감동이 있는 전쟁영화”라는 호평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범수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명쾌한 비유를 들어보였다.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었는데 ‘왜 박음질이 그 모양이야? 절개 면이 왜 그래?’라는 비판을 받으면 당연히 개선해야죠. 오히려 감사한 얘기고요. 그런데 ‘그 옷 디자인 자체가 왜 그래?’라고 하면 좀 막연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여름인데 왜 긴팔이야?’라고 물으면 ‘여름에 긴팔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라고 할 수밖에요. 반팔 입는 사람도, 긴팔 입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냥, 되게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천상륙작전은 ‘태양은 없다’(1999) ‘오! 브라더스’(2003) 이후 이정재와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라 그에게 더욱 의미가 깊다.

“(이)정재와 다시 만나 너무 반가웠죠. 세월이 정말 빠르다 싶더라고요. ‘태양은 없다’ 끝나고 5년 만에 ‘오! 브라더스’에서 만나 ‘야, 벌써 5년 지났다’고 얘기했던 게 또 14년 전 일이 됐으니까요.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죠.”


무슨 운명인지, 이정재와 절친인 정우성과도 ‘태양은 없다’ ‘러브’(이상 1999) ‘신의 한 수’(2014) 등 세 작품에서 함께했다. 이범수는 “두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분야에서 이렇게 오래 활약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의 매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게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게 땀 흘리고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20여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물었다. 다른 배우 얘기에는 술술 대답하던 그가 이 질문에는 멋쩍은 듯 단 한 마디만을 내놨다. “부족하지만 제 딴에는 좀 더 새롭게 도전하고 모험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다음 도전은 어떤 모습일까. 이범수의 휴먼코미디가 그립다는 얘기를 넌지시 건넸는데, 뜻하지 않은 반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볼 때 지금 흐름은 악역인데 그 다음은 휴먼일 것 같아요. 코믹이 올 때가 됐어요. 코믹 진짜 해보고 싶어요. 기를 모으고 있어요(웃음). 바람이 있다면, 어차피 우스갯소리니까, 주성치씨랑 한번 같이 해보고 싶어요. 내 스타일인 것 같더라고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