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 아내와 나, 인영이는 모두 멘붕에 빠져있다. 악몽은 어제 입원해 가슴정맥관에 바늘을 꼽으면서 시작됐다. 병원 인증평가 기간이라 숙련된 간호사가 아닌 인턴 1년차 의사가 한다고 왔는데, 역시나 실패했다. 인영이는 아프고 놀랐는지 너무 울어 새알 머리에 점상출혈(힘을 줘 실핏줄이 터진 현상)이 생겼다. 1시간 뒤 간호사가 와서 몰래 연결 해주면서 일단락이 된 줄 알았는데, 이번엔 집의 달콤함을 알게 된 인영이가 문제였다. 집에 가자고 노래를 부르다 10시 넘어 자더니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에 가자고 엄마를 졸랐단다. 아내는 4시부터 복도에 나와 잠을 설쳤다.
점심시간 내가 웃으며 밖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인영이는 척수 시술을 받았다. 내 손가락 길이의 긴 바늘로 허리 밑부분을 찔러 척수액을 빼내고 항암제를 넣는 시술이다. 그런데 매번 레지던트 4년차가 하더니 이번엔 레지던트 1년차가 했단다. 2번 바늘을 찔렀지만 모두 실패하고 허리춤에 피만 흥건히 고였다고 한다. 점상출혈은 인영이 이마와 눈가까지 번져 얼굴이 울긋불긋해졌고 눈은 퉁퉁부었다. 인영이는 3일 뒤 재시술을 받아야 한다. 밥을 먹고 잠시 무균실에 올라가보니 기절한 듯 자고 있는 인영이를 안고 아내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인영이는 지난번에 없던 구토 부작용도 겪고 있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 집에만 가자고 졸라댄다.
엄마는 이미 그로기 상태고, 입원을 위해 애쓴 나 역시 멘붕이다.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은 의료진에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 그들에게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영이한테 내일 킨더조이 10개 사온다고 약속하고 병실을 나와 주말판 기사를 막았다. 밥 생각도 없어 멍하니 성모병원 기자실에 홀로 앉아있다. 인영이는 무균실 복도를 돌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 밤 11시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아내는 오늘아침에 새로 들어온 애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투덜대는 옆 침대 보호자가 무서워 병실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번엔 천국에 올라간 줄 알았는데 천국은 없었다.(2016년3월24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