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의 2차 항암 일정이 끝났다. 4주 간의 관해(암세포가 5%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 유도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공고(다지기)요법의 첫 발걸음을 뗀 셈이다. 5일간 이뤄진 이번 치료 역시 인영이는 구토 한번 없이 무사히 소화해냈다. 입원 대기가 밀려 입원하지 못하고 3번의 ‘1박2일’ 일정을 통해 항암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이틀은 항암치료가 6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사실 내 베드도 배정해주지 않았다. 인영이는 철제의자에 앉아 채혈을 하고 항암제를 맞았고, 복도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인영이 뿐 아니라 다른 환아들도 마찬가지로 시장통 같은 주사실 복도에서 6~7시간을 견뎌야 한다. 밥을 먹으려면 지하 식당에 내려가서 금지 음식을 제외한 고명 안 넣은 칼국수 정도를 먹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환자복을 갈아입고 가야 된다. 대부분의 어린 환자들은 그래서 빵이나 우유로 요기를 때우며 10시간 가까이 굶는다. 침대에 한번 누운 적 없지만 하루 입원·퇴원으로 진료비는 계산된다. 헬조선. 단 5일 경험했지만 그만큼 적합한 단어는 없었다. 아내와 돌아오면서 다음 주 화요일에도 병실이 없어 입원이 안된다고 하면 하루 57만원짜리 특실이라도 우선 입원을 시키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 병원 가는 고속버스 안. 창밖을 내다보는 인영이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그런데 이런 우리와 달리 인영이는 아픈 주사 맞을 때 외에는 요즘 생활을 즐기는 듯 하다. 우선 제일 좋아하는 엄마는 24시간 내내 자기 곁에 붙어있다. 새 장난감 하나 안 사주던 아빠는 아픈 주사만 맞으면 장난감을 들고 나타난다. 병원에서 자기 또래의 친구나 새로운 언니·오빠들을 만나고, 새로운 집에 놀러간다. 차타고 창밖 내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아빠 차를 타고 빠방놀이를 할 수 있다. 인영이는 마취 없이 맞는 척수주사도 뽀로로 인형을 벗기고 허리 쪽에 주사를 놓고 반창고를 붙이는 놀이로 승화시켰다.
20년 전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어린 아들과 나치 수용소에 갇힌 아빠가 처참한 수용소 생활을 즐거운 게임으로 만들어 아들을 지켜내고 자신은 마지막까지 아들에게 웃음을 주고 사라지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나는 사라지지 않고 화가(벽에 그림을 그리는)가 될 때까지 인영이와 함께 할 것이라는 점. 그러고 보면 지금 내 ‘인생은 아름답다.’(2016년3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