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여성 대통령이 나올 거야”… 불과 11년 전인데도 쫒겨난 ‘성지글’

입력 2016-07-29 06:07 수정 2016-07-31 11:32
사진=미국 뉴욕 여성운동 라디오방송 '우먼라디오' 트위터 캡쳐

“언젠간 여성 대통령이 나올 거야(Someday a woman will be president)!”

지금 봐선 놀랄 것 없는 문장이지만 1995년 미국에선 그렇지 못했다. 이 문구가 박힌 티셔츠는  “일부 고객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로 마트 매대에서 끌어내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상 주요정당의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등극하자 10여년 전 유통체인 월마트 매장에서 쫓겨난 티셔츠가 회자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995년 월마트 매장에 이 티셔츠를 팔았던 여성인권운동가 앤 몰리버 루벤(91)을 인터뷰해 27일 보도했다.

당시 루벤은 심리학·교육학 전공자로서 피츠버그대에서 어린이들이 여성 지도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를 위해 초등학생 1500명을 조사한 결과 아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남자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냈다. 충격적인 결과에 뭔가 해야겠다 마음 먹은 루벤은 여자아이에게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는 티셔츠를 팔기로 했다.

당시 인기있던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Dennis the Menace)에 등장하는 곱슬머리 소녀 캐릭터 마가렛이 우선 눈에 띄었다. 만화 속에 마침 적당한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 데니스가 남자아이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을 만들자 마가렛이 왜 그게 옳지 않은지를 알려주며 언젠가 여성 대통령이 나올 거라 말하는 장면이었다. 루벤은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이 장면을 티셔츠에 넣고 플로리다주 미라마의 한 월마트 매장에 팔았다.

문제는 그 뒤였다. 이 티셔츠는 일부 고객으로부터 “너무 정치적이라 보기 불편하다”는 항의를 받았다. 그러자 월마트는 티셔츠를 매대에서 철수시켰다. 항의에는 “월마트의 가족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변명이 돌아왔다. 지역언론 마이애미헤럴드가 취재에 나서자 월마트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월마트 정책에 맞지 않아서”라고 변명했다.

같은 해 12월 사건이 보도되자 기사를 보고 분노한 각지의 여성들이 매장에 빗발치듯 항의전화를 걸었다. 각종 여성단체와 회사에서 티셔츠 5만벌 주문이 새로 들어왔다. 월마트에서도 3만벌을 더 주문해 전국매장 2000여 곳에 진열했다. 루벤은 나중에 티셔츠 뒤쪽에 문구 하나를 더 박았다.

 “그 언젠가는 바로 지금이야(Someday is now).”

26일 클린턴이 민주당의 공식후보로 선출된 뒤 이 티셔츠는 새삼스레 SNS에서 화제가 됐다. 루벤은 심정을 묻는 WP의 질문에 “어린시절 처음 그 생각을 한 때로부터 83년을 기다렸다”면서 “직접 그 일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어 신께 감사한다”고 감격해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