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 갑질 매뉴얼’ 논란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이 3년간 61명을 갈아치우면서 과도한 노동시간을 근로조건으로 내세운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정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사건을 이달 21일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고용노동부 조사결과 정 사장은 지난 3년간 회사 업무기사 51명과 수행기사 10명에게 근로기준법에 규정한 근무시간인 주 56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80시간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중 1명은 폭행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 80시간이면 하루에 18시간, 일일 근로시간인 8시간에 2배에 이른다. 강남지청은 운전기사들을 일일이 다 조사했지만 대부분 관련 업종에서 종사하기 때문에 진술을 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갑질 매뉴얼’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의 정식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강남지청은 설명했다.
해당 운전기사들은 파견업체에 소속된 근로자였다. 때문에 현대비엔지스틸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닌 데다 매뉴얼 자체도 내부적으로 작성한 업무기준에 불과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강남지청의 입장이다. 이로써 정 사장의 혐의는 운전기사의 근로시간 위반과 폭행 혐의만 적용됐다.
현대가 3세인 정 사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넷째 아들인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이다. 지난 4월 일과가 촘촘히 규정된 A4용지 140여장 분량의 매뉴얼을 만든 뒤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운전기사에게 폭행화 폭언을 일삼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물의를 빚었다.
정 사장은 사건이 불거지자 같은 달 자사 홈페이지에 “저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용서를 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보도 내용을 근거로 정 사장을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된 뒤 서울강남지청으로 내려와 조사에 착수했다.
를 최초 보도한 노컷뉴스에 따르면 갑질 매뉴얼은 굉장히 까다롭다. 매뉴얼에는 ▲모닝콜은 받을 때까지 ‘악착같이’ 해야 함, “일어났다, 알았다”고 하면 더 이상 안 해도 됨 ▲모닝콜 뒤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 …(중략) …신문 깔고 서류가방은 2개의 포켓 주머니가 정면을 향하게 둠 ▲출발 30분 전부터 ‘빌라 내 현관 옆 기둥 뒤’에서 대기할 것 ▲(운동복)세탁물을 ‘1시간 내’ 배달하지 못할 경우 운행가능 기사가 이동 후 초벌세탁 실시 등이 적혀 있다.
사모님 기상 이전과 취침 이후에는 취침에 방해되므로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정 사장의 갑질 매뉴얼은 앞서 발생했던 대림산업이나 몽고간장, 미스터피자 등과 비교해 ‘으뜸’이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현대판 노예가 따로 없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이어졌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