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연출 외교’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지난 24일 라오스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왕 부장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을 출발해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그는 활주로에 몰려든 취재진에게 “(이 외무상과) 같은 비행기를 탔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이 외무상과의 양자 회담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기다려달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런 이상 기류는 그날 밤부터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왕 부장은 당초 계획을 바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모두발언 부분을 우리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사드 성토’를 숨김없이 우리 국민들에게 전하도록 했다. 마뜩찮은 듯 손사래를 치는 장면까지 여과 없이 나갔다.
이튿날 중국은 확실히 ‘쐐기’를 박아줬다. ‘사드가 싫으니 북한을 끌어안겠다’는, 우리 국민이 곱게 봐주기 어려운 그림을 끝내 만들어냈다. 왕 부장은 이 외무상의 어깨를 쓰다듬고 밝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더니 사회주의권 국가 특유의 과장된 인사를 나눴다. 거기에 더해 제3자인 우리 취재진을 회담장에 불러들여 이런 장면이 보도되도록 놔뒀다.
중국의 의도는 뻔하다. 사드 배치 이후 한·중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다. 한·중 회담 당시 중국 측은 취재진이 모두 나가고 외교관들만의 ‘본게임’이 시작되자 우리 측을 ‘라오펑유(老朋友)’로 칭하며 안색을 바꿨다고 한다. 북·중 회담 때는 취재진이 퇴장한 뒤 북한에 ‘당신들 때문에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다’며 호통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중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다면 중국의 전략적 손실도 적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과도한 비약이긴 하지만 한·중 관계가 끊기고 한·미·일 관계는 삼각동맹으로 격상된다면 중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사실상 ‘해상봉쇄’를 당하는 셈이 된다. 중국이 ‘이중 플레이’를 벌인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 아무튼 분명한 건 사드 논쟁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 풀 문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현장기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연출 외교'
입력 2016-07-26 1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