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성재기의 3주기는 찾아왔다. ‘메갈리아’ 논란 등 이성혐오가 들썩인 2016년에서다. 성재기는 이성간 갈등이 혐오로 번지기 수년 전, 한국 사회에는 생소한 ‘남성 인권운동가’로서 많은 사람의 멸시와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다.
성재기는 2013년 7월 26일 오후 3시쯤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그는 사흘만인 같은 달 29일 4시10분쯤 서강대교 남단 근처 한강 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날 성재기는 “한강에 투신하겠다”는 예고문을 느닷없이 올렸다. 그는 “600여개 여성단체들이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남성을 위한 단체는 남성연대뿐”이라며 “남성연대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 십시일반으로 저희에게 1억원을 빌려달라”는 호소문을 올렸다.
국내 유일의 남성단체가 절실히 필요했던 건 직원들의 수고비 명목과 행사 진행으로 일용할 돈 1억원이었다. 남성연대는 2011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각종 행사 비용 등으로 2억4670만원을 썼지만, 후원금 수입은 1956만원에 불과했다.
그 해로부터 1년이 지난 2014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마포대교에는 그를 추모하는 조화가 올려졌다. 또 군 가산점제 폐지를 반대하는 그의 발언들을 곱씹는 ‘남성’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2년째인 2015년 여름에는 그 발길이 완전히 뜸해졌다. 한 두명이 찾아 조화와 소주를 다리 난간에 올려놔 심심한 위로를 표했다.
성재기는 남성연대의 창립자로 1999년 군 간산점 폐지를 계기로 남성의 권리와 혜택을 주장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논객으로서 호주제 폐지 반대 운동과 군 가산점 부활운동, 여성가족부 폐지 운동, 여성 할당제 폐지 운동, 게임 셧다운제 폐지 운동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아청법) 전면 철폐에 목소리를 냈다.
성재기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간혹 SNS에 문제를 일으킬 듯한 발언들을 남겼다. 군가산점제 부활 등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내 ‘소수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자살해라는 뜻을 지닌 “재기해”라는 은어로 고인이 되고 나서조차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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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독 이성혐오가 세간의 이슈로 부상했다. 남성혐오를 뜻하는 ‘남혐’과 여성혐오를 뜻하는 ‘여혐’ 양 극단이 팽팽히 맞서 갈등을 유발했다. 성재기가 투신한 3년 전만 하더라도 이성간 혐오가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두 극단은 3년새 더 멀어지는 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