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나비' 강수진, 눈물 대신 웃음으로 관객과 작별

입력 2016-07-23 11:58 수정 2016-07-23 12:11
강수진이 22일(현지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하우스에서 현역 은퇴무대인 ‘오네긴’ 공연을 마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관객들이 빨간 하트와 함께 “고마워요, 수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강수진을 연호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공식 페이스북

강수진은 활짝 웃었다. 관객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지만 금세 환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를 영어, 독일어, 한국어로 연신 외쳤다.
22일(현지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하우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종신무용수인 강수진이 ‘오네긴’으로 현역 은퇴무대를 가졌다. 존 크랑코가 푸슈킨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안무한 ‘오네긴’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여주인공 타티아나는 강수진의 간판 배역이기도 하다.

강수진은 이날 사랑의 열병을 앓는 순진한 시골처녀부터 첫사랑에 대한 애증으로 갈등하는 귀부인까지 타티아나의 감정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강수진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가벼웠고, 오네긴 역의 제이슨 레일리와 추는 2인무는 화려했다. 특히 3막에서 뒤늦게 구애하는 오네긴을 밀어낸 뒤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은 역시나 압권이었다.

'오네긴'의 3막에서 강수진이 연기하는 타티아나가 제이슨 레일리가 연기하는 오네긴의 구애를 뿌리치며 나가라는 몸짓을 하고 있다. (c)Bernd Weissbrod

일부 관객은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프랑스 툴루즈 캐피톨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조지 발란신 재단의 대표 교사이기도 한 나네트 글루샥도 그 중 한명이다. 글루샥 감독은 “나도 발레를 했었기 때문에 은퇴공연을 하는 수진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울컥했다. 수진을 안지 25년 정도 됐는데, 그녀는 정말 대단한 발레리나였다”고 말했다.

강수진의 혼신을 다한 마지막 춤과 연기에 객석(14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일부 팬들은 준비했던 꽃다발을 강수진에게 전하기도 했다. 이어 무대 뒤편에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 할 거에요”라는 스크린이 내려오면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들과 스태프 100여명이 한사람 한사람 무대에 올라 강수진에게 차례로 장미꽃 한송이씩을 안기며 작별인사를 보냈다.

지난해 11월 한국 고별 공연을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인지 강수진은 눈물 대신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관객이 일제히 빨간 하트와 함께 “고마워요, 수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을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객석에는 좌석마다 리드 앤더슨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예술감독으로부터 커튼콜 때 자신의 신호에 맞춰 플래카드를 들어달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무대 뒤편에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 할 거에요”라는 스크린을 배경으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들과 스태프 100여명이 한사람 한사람 무대에 올라 강수진에게 차례로 장미꽃 한송이씩을 안기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작별을 아쉬워하는 관객들이 계속 박수를 보내는 바람에 강수진은 이후에도 한동안 무대에 불려나와 인사를 해야 했다. 강수진은 무대 뒤편에 있던 남편 툰치 소크만과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나와 관객 앞에서 포옹을 나눴다. 이날은 강수진이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이기도 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강수진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무대가 마침내 끝났다. 충분히 만족스럽다.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일부 팬들은 오페라하우스 밖에서 강수진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기다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슈투트가르트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크리스틴 쾨니히 씨는 “오랫동안 강수진의 공연을 봐왔다. 강수진은 정말 아름답고 완벽한 무용수다. 무대에서 저토록 젊게 보이는데 은퇴라니 너무 아쉽다. 다시는 춤추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한편 강수진의 마지막 무대를 보려는 팬들로 이번 공연은 3개월전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매진됐다. 그래서 공연 시작 전 오페라하우스 앞에는 취소 티켓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티켓 구함’이라는 종이를 든 사람들도 등장했다.

강수진이 '오네긴' 공연을 마친 뒤 백스테이지에서 리드 앤더슨(가운데) 예술감독을 비롯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 및 스태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특히 이날 오페라하우스에는 평소와 달리 한국 관객들이 꽤 많이 보였다. 독일 각지는 물론 한국에서까지 강수진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카이저슬라우턴에서 온 맹세은 씨는 “강수진의 은퇴공연을 보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 오늘 공연은 멀리에서 온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서울에서 온 김혜리 씨는 “강수진의 팬인데 지난해 11월 국내 고별무대를 보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독일에서 열리는 은퇴공연을 꼭 보려고 여름휴가로 왔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