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22일 자신의 일기를 통해 최근 승부조작 파문에 대해 “마음이 참담했다”고 전했다. 또 “자신들의 행동이 팬들에게, 동료들에게, 선·후배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높아진 연봉만큼 책임도 높아져야 하는 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많지 않았던 점은 야구선배로서 책임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이 전 감독의 22일 일기 전문
<감자탕 두 그릇과 박경택 감독>
어제는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 병문안을 갔다가 늦은 저녁식사를 위해 아내와 동네 감자탕 식당에 갔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등뒤에서 야구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승부조작에 도박에…. 거친 욕까지 섞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얼굴도 들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야구인으로, 그들의 야구선배로, 그리고 프로야구가 생기기전 열악한 환경 속에도 열심히 뛰어준 예전 선배들의 후배로서 마음이 참담했다.
밥을 먹는 등 마는 등 하고 있는데 나이 드신 아저씨 두 분이 사인을 요청해 왔다. 야구를 참 좋아하신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을 하려고 하니 사인을 받으셨던 아저씨들이 벌써 우리 식대까지 계산하고 가셨다.
감자탕 두그릇…. 소탈해 보이는 그분들의 대접이 너무 송구스러운 저녁이었다.
이번 주 재능기부는 인천 서흥초등학교에서 했다.
올해 16명의 작은 인원으로 야구단을 꾸려 나갔는데 6학년인 졸업예정자들이 7명이나 있어서 내년에는 선수가 9명 밖에 남지 않는다는 딱한 사정을 들었다.
50대 중반의 박경택 감독은 박봉의 초등학교 야구부를 20년째 맡아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4, 5, 6학년이 연습하는 동안 1, 2학년 꼬마 선수들은 홈플레이트 근처에 비닐풀장을 준비해서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었다.
얼마나 귀여운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를 보고 “할아버지 내일도 오세요?” 하면서 물어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한 학교(인천 서흥초등학교)에서만 20년이나 야구부를 맡고 있는 박 감독을 만나보니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화려하게 보이는 프로야구의 뒤편에서 이렇게 묵묵히 야구를 사랑하고 기꺼이 밑거름이 되어주는 야구인들의 수고를 재능기부를 다니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프로야구선수들의 일탈은 충분히 반성하고 반드시 근절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이 팬들에게, 동료들에게, 선·후배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높아진 연봉만큼 책임도 높아져야 하는 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많지 않았던 점은 야구선배로서 책임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면에서 박찬호 후배나 이승엽 후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야구를 잘해서 얻게 되는 명예나 돈이 전부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팬과 야구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감자탕 두 그릇을 대접해준 팬…. 야구부 아이들을 자식처럼 보듬는 초등학교 야구감독 때문에 많이 고맙고 미안한 한 주간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